시와 인접예술론 : 연제 2회 [시전문 계간지 ‘신생’ 1999년 제2호에서]
윤이상의 음악과 동양사상 (2)
김철화
도교의 음악 사상
도교의 음악 사상은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기(770-221 B.C.) 노자(老子, 570-460 B.C.)가 대표적으로 내세웠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장자(莊子, 339-286 B.C.)에 의해 확장되고 A.D. 3세기경 중국이 위(魏)에서 진(晉)으로 교체될 무렵 은둔 생활을 지향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 康, 223-262)에 의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음악 사상으로 정리되었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서 당시 하남성 녹읍현에서 국가의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史官)을 지내기도 했으나 은둔하려 하던 북서쪽 관문 감독관 윤희가 후세를 위해 그의 가르침을 남겨 주기를 간청한 것을 그가 수락하여 집필한 것이 <도덕경(道德經)>이다. 5,000여 자에 그의 본질인 도가 사상을 압축해 놓았는데 '道'자로 시작하며 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도경](1-37장)과 '德'자로 시작하여 도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덕경](38-81장)을 합쳐 총 81장에 이른다. 노자의 음악 사상은 그의 자연관 및 사회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자연관에서 노자는 원시적 유물론자이며 그의 철학은 수많은 변증법적 요소를 담고 있다. 그의 사회관은 원시 공동사회의 소박한 생활로 돌아가려는 환상적이면서도 현실 도피적 경향이 강하여,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유교 이념과는 대치되는 일종의 사회 정치적 반동이었다. 유가가 인간들의 윤리관과 정치 질서의 모범으로서 '예'(禮)를 숭상하고 최고의 이상적 가치로 설정하였는데 이를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르게 하기 위하여서 악(樂)으로서 교화하고 나아가 이상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도가는 유가의 사상이 '예'(禮)와 악(樂)을 지나치게 규범과 관련시키고 형식화시켜 인간의 마음을 오히려 억압하고 획일화시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도교 음악 사상의 본질을 집대성한 것이 혜강의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이다. 혜강은 대부분의 유가의 음악 사상을 받아들였으나 음악의 정치성, 사회 작용, 교육 작용을 부인하였다. 그의 목적은 집권자가 이용하고 있는 일부 유가 사상을 반대하는 데 있었다. 그는 개성 해방을 주장하면서 통치자의 일방적이며 획일적인 사상 통제에 대항하였다. 그가 음악에서 정치성을 뽑아버려 음악을 초인적 사물로 만드는 한편, 형식에 소속된 것으로 만든 목적은 음악을 통치자의 농단과 통제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통치자 주도의 음악 창작, 이론 및 음악 활동을 일반인에게도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지위로 인정하였다.
7세기에 이르러 도교는 중국에서 하나의 민간 종교로 발전하였으며 하나의 생활 철학으로 도입되었다. 일반 백성들은 유교나 불교 보다는 도교의 정신성에 많이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중국의 도교는 한국의 샤마니즘(Shamanism)이나 일본의 신토이즘(Shintosim)과 같이 사물과 자연에 대하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교는 유교나 불교와는 반대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약한 지식층에 의해 보존되어 왔는데 <도덕경>에 나타난 노자의 중심 사상은, 인간은 우주의 완성과 원대함에 동참하고 있으며 '도를 통한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곧바로 기적을 믿는 무속신앙에 흡수되었으며 통속화되면서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모든 것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만물이 생기고 없어지는데
나는 본래대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뿐.
그들은 자라고 자라서 본래대로 돌아간다.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고요함,
본성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은 영원하며 영원함을 아는 것은 총명함,
영원함을 모르므로 재난이 생긴다.
영원함을 알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을 열면 공평해지며
공평해지면 당당히 행동하게 되고
당당하면 하늘을 얻게 된다.
하늘이 바로 도이며 도는 영원하니
몸은 죽더라도 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도교에서는 인간과 자연, 나아가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일체로 보았다.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도'인데 그것은 만물이 '움직임'(動) 속에 존재하나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움직이지 않는 것'(靜)이다.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지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는 무수한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이른바 '움직이지 않음 속의 움직임'인 '정중동(靜中動)' 사상이다.
노자는 모든 만물이나 현상에 대해 절대적인 의미나 또는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짓는 것을 거부하고 모든 만물의 현상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는 '크다'와 '작다'라는 개념을 인간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되어지는 의식적 현상으로 보았는데 마치 대우주(macrocosm) 속에 소우주(microcosm)가 있으며 그 소우주 속에 또다른 소우주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알 수 있음은
오직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함을 착하다고 알 수 있음은
오직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고 없음은 상대적으로 나타나고
어렵고 쉬움도 상대적으로 이루어진다.
길고 짧음도 상대적으로 형성되고
높고 낮음도 상대적으로 대비된다.
노래와 소리도 상대적으로 어울리고
앞과 뒤도 상대적으로 있게 된다. …(중략)…
그리하여 도교에서는 어느 한쪽의 세력이 성하거나 쇠하는 것을 피하며 소위 말하는 음(陰)과 양(陽)이 조화를 이룬 상태를 최고의 덕으로 삼는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그리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껴안은 채
힘을 모아 조화를 이루네. …(중략)…
춘추전국 말 진(秦, B.C. 246-207)의 승상이었던 여불위(呂不韋)의 주도 아래 집필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대악> 편에서도 자기도취적이지 않고 진실한 음악은 하늘과 땅의 조화에 기반을 두며, 완벽한 음악은 균형에서 나오고, 균형은 올바름에서 나오며, 올바른 것은 다시금 세계의 이치인 도(道)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도교의 음악 사상과 윤이상의 음악과의 관계
윤이상에 있어 창작의 원천은 무엇보다도 도교와의 연관성이 우선한다.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음악의 구성이나, 선율의 움직임, 화성의 조직 및 음향의 처리 방법은 유럽 음악과는 다르다. 여기서는 윤이상이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창안하거나 개발하여 사용한 대표적인 음악 어법 및 작곡기법들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1) 정중동(靜中動, Movement within Quiescence)
도교에서는 움직이는 것은 먼 곳으로 가고, 먼 곳으로 간 것은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즉 근본에 있어서는 '움직임(動)'이 항상 존재하나,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움직이지 않는 것(靜)'이며 통일 속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도교에서 말하는 유전(流轉)의 법칙을 일컫는 것인데, 유전의 도교적 의미는 끊임없이 변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윤이상은 1965년 포드재단 주최 '윤이상과의 대담'에서 서양 음악과 한국 음악을 비교하면서 서양 음악의 선을 연필로 그은 경직된 것으로, 한국 음악의 선을 붓으로 그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유연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예 5] 서예의 농담(濃淡)의 변화
動 靜 動
그러므로 윤이상은 어떤 음을 사용함에 있어 고립되거나 경직된 직선과 같은 처리를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음을 울리게 한 후로는 장식음이나 비브라토 등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미세한 변화를 이루어 나간다. 한편으로 그가 음을 길게 지속시키고자 할 때는 항상 그 첫머리에 강한 음량이나 리듬의 동요 등을 동반한 액센트가 붙는다. 이는 마치 긴 선을 긋기에 앞서 종이 위에 힘차게 붓을 내리찍는 우리 전통의 서예를 떠올리게 한다. [예 6]의 악보에서 Bb음이 지속되기 위해 앞머리에 강한 장식음이 부과되고 그 음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점점 강한 비브라토를 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으며 지속음의 말미에는 다시 음의 강도를 커지게 하면서 다시 꾸밈음들을 동원하여 동요하게 한 뒤 점을 찍듯 마무리한다. 붓글씨에서 처음 붓을 놓을 때와 획의 마지막을 뗄 때 가장 많은 주의와 정신력을 집중하는 것과 중간 부분에서, 연필과는 달리, 획이 진행되는 동안 붓의 상태와 붓을 움직이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농담(濃淡, 짙고 엷음)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처럼 윤이상이 창출하는 선율의 모형은 서예의 필치를 빼어 닮았다.
[예 6] 윤이상의 플루트를 위한 연습곡 (1974), moderato의 시작 부분
독일의 음악학자 한스 외쉬(Hans Oesch)는 1987년 Text & Kritik에서 발행한 {작곡가 윤이상}에 [도의 정신에서 나온 음악]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러한 특성을 아래와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음이 지속되어 소리나는 동안 고유한 체험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부단한 흐름은 그림이나 서예에서의 붓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농담과 강도의 변화를 자아낸다. 다시 말하여 시각적 현상이나 청각적 현상이 여기서는 모두 변화하는 강도로서 형상화됨으로써 그 나름대로 고유한 회화적 특질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서양적인 음진행은 오히려 소묘(sketch)적 원칙에 상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음악에서 하나의 음이 갖는 기능은 도(道)의 특성으로 부각되어 있다.
[예 7] 윤이상, 교향곡 1번 , 82-85마디
우리가 우리 나라의 전통 음악, 특히 영산회상(靈山會上)이나 수제천(壽齊天)과 같은 합주음악을 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같거나 비슷한 악구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의 선율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 한번도 같은 반복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정지해 있는 듯하나 그 속에서는 부단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의 한 예로서 위의 [예 7]에서 보이는 윤이상의 1983년 작, "교향곡 1번"의 경우, 거기에는 수많은 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하나의 음향의 흐름이 보인다. 그것을 더 멀리에서 보면 마치 정지해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그 자신이 말한대로 음향의 공간성과 구체성, 상상적인 접근과 멀어짐, 빛과 음영이 어우러지는 관계, 일종의 정지 속의 움직임 바로 그것이다.
(2) 주요음(main tone, Hauptton)
<도덕경> 40장에 이르기를 "천하 만물은 있음에서 나오고 있음은 없음에서 나온다."고 했으며 21장에는 "가장 위대한 덕은 도를 따르며 도 그 자체이다. 도는 알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그 안에는 형상이 있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하였다. 만물의 생성과 변화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며 이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였고 이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 상태와의 동화 혹은 일체화의 대상으로서 우주의 대자연을 파악하는 세계관을 가졌다.윤이상은 이러한 도의 논리를 적용하기 위해 주요음(main tone, Hauptton)이라는 획기적이며 독창적인 기법을 창안하였다.
서양 음악에서 개개의 음은 그것의 높이, 강도, 지속시간 등이 분명히 명확하게 규정되어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개개의 음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표현할 수가 없다. 단지 그것은 한 그룹 속의 일원으로서 서로와의 관계성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그 개별적 음은 수평적으로는 선율을 구성하는 몇 개의 음표 중의 하나로서, 수직적으로는 화음을 구축하는 한 인자로서 작용할 뿐이다. 그러나 도교적 정신 세계에 영향을 받아온 동아시아 문화권의 음악에서는 개별음 그 자체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부단한 유전의 과정을 일으키며 충분한 음악적 사건을 만들어 낸다. 1993년 윤이상은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강의에서 "나의 작곡의 기초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서 '각각의 음'(Einzelton, single tone)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개개의 음은 많은 변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전타음과 진동음, 비브라토, 액센트, 여러 가지 장식음 등의 음향적 주변음과 함께 초석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아래의 예는 윤이상의 초기 출세작 대관현악을 위한 예악 (1975/76)에서 발췌한 것으로 주요음의 구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예 8] 윤이상의 예악 81-84 마디.
여기서 우리는 A음이 주요음인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는데, A음은 다양한 dynamics의 변화와 장식음들을 수반한 가운데 지속되고 있다. 이 주요음은 혼자서는 음악이 될 수 없고 대개의 경우 그 음의 앞과 뒤, 그 사이에 전타음과 같은 것을 필요로 한다. 또 이 주요음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들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때에 따라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이 주요음의 주변에는 다양한 표현수단이 존재하며 여러 가지 조형이 가능하다. 이 주요음의 기법은 도교적 원리인 유전의 법칙을 그대로 담고 있는 한편 한국음악에서 보이는 멜로디형의 기본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전통 음악에는 화성이나 대위적 법칙을 적용한 구조적 음악이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개별음에 의해 음악이 전개되는데, 이 개별음이 계속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 해야한다. 이러한 형상화에 동원되는 것이 비브라토, 앞 뒤 꾸밈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식음, 글리산도, 음량의 농담(濃淡) 등이며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개별음은 커다란 생명력을 얻게 된다. 우리 전통음악의 악보에는 선적인 음진행에 있어 리듬의 표시는 대략적인 문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고, 이 선을 장식하는 일은 연주자의 표현 의지와 기술에 따른 즉흥적 연주 능력에 맡겨졌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음악인 '시조창'은 지속음이 다섯 장단 진행되는 동안 한음이 제 높이에서 머무르지 않고 음의 높이를 매끄럽게 올렸다 내렸다 함으로써 커다란 음의 굴곡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음고나 음량 변화는 기보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특성을 윤이상은 그의 주요음 기법 속에 그대로 용해시켰다.
[예 9] 한국 전통음악 수제천 중에서
(3) 음양사상(陰陽思想)
도교 철학에서 모든 존재의 출발점은 도(道)이다. 나눌 수 없는 통일체인 이 도로부터 음과 양이라는 두 근본 원리가 전개되어 나오며 이들의 다양한 결합에서 만물이 생성한다고 한다. 11세기의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주돈이(1017-1073)에 의하면 '움직임(動)을 통한 극치가 양(陽)을 만들어 내는데, 이 동(動)이 그 한계에 달하면 정지 상태(靜)가 되고 이 정(靜)에서 동(動)이 음(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 정(靜)이 그 한계에 다다르면 거기서 동(動)으로 돌아가는데, 동(動)과 정(靜)이 양자택일적이기는 하나 서로 보완적이기도 하다.' 고 한다.
윤이상의 음악은 이러한 도교 철학의 음과 양의 대비와 조화를 중심 제재로 한다. 음과 양 관념의 작용이 음악적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은 형식, 선율, 화성, 그리고 음량현상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다. 아래의 악보 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음양의 원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
[예 10] 윤이상의 쳄발로를 위한 소양음 (小陽陰, 1966)의 시작 부분
•화성: 이 곡의 처음 시작의 셋잇단음(맨 아랫 성부)이 만들어내는 화음 구조는 이 작품의 화성 구조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 화음의 본질은 협화 음정과 불협화 음정의 결합이다. 중간 성부에서 나타나는 두 번째 화음도 마찬가지인데, 완전4도에다 단2도를 결합한 형태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도교의 음양 원리를 표현한 화성이며 윤이상의 화성 구성의 핵으로 볼 수 있다. 기능적 화성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협화 음정으로 볼 수 있는 장단 3도, 6도와 완전음정 사이에 불협화를 만드는 단2도나 증음정들이 부과됨으로써 음향이 지나치게 협화적이거나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을 지양한,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음의 움직임은 옥타브의 위치를 바꾸거나 음의 위치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계속 발전되어진다.
•리듬: pitch와 결부되어 선율선을 만들어내는 리듬은 움직임과 정지와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으며 리듬의 빠르기를 결정짓는 탬포(tempo) 역시 빠르고 느림을 교대하고 있다.
•음의 강도: 음량 구조 역시 셈과 여림을 교대로 반복하고 있다.
•음고(音高): 저음으로부터 고음으로의 음 공간의 양극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짧은 단편 속에 내재된 다층적 구조는 도교적 이념의 기초가 되는 통일체에 대한 작곡적 구상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이 통일체 안에는 정-동(靜-動), 강-유(强-柔) 등의 변증법적 순환 과정이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독일의 text+kritik 출판사에서 발행한 음악백과사전 중에서 '이 시대의 작곡가들'(Komponisten der Gegenwart) 편에 수록된 글에서 윤이상 음악의 전문 이론가인 볼프강 슈파러(Wolfgan Sparrer)는 윤이상의 작곡방식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음양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음과 양을 상징하는 음악적 현상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의 설명을 토대로 윤이상이 그의 음악 속에 구체화시킨 음양의 원리를 도교에서 말하는 것과 비교를 위해 아래와 같이 도표로 만들어 보았다.
[예 11] 도교와 윤이상 음악에서의 음양 현상 비교
1988년 윤이상은 재독 사상가 송두율과의 대담에서 그의 음악은 마치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듯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음악 세계의 본질은 우리 궁정 음악에 나타나는 음악의 세계와 화성학이나 대위법 등을 중심으로 발전한 서양의 음의 세계도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적 직관과 서양적 분석이 결합하고, 동양의 신비와 서양의 합리적 세계관과도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음과 양이 서로 필요로 하듯이 상대성과 균형성이 나의 음악 세계 안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고, 동양적인 것만은 아니면서도 또 서양적인 것만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이상은 삶의 절반은 동양에서, 절반은 서양에서 살았으며 이념적으로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극단을 넘나들며 그 둘의 결합의 정신적 사절로서 분투했다.마치 음양이 조화를 이룬 상태처럼 이념을 넘어선 민족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4) 주요음향 기법(Main Sound Technique, Hauptklangtechnik)
'주요음 기법'에서 하나의 개별 음은 많은 주변음들을 동반하거나 미분음적 파상운동, 비브라토 등을 통하여 하나의 '음향 복합체'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음향복합체가 여러 개로 중첩되어 합성되어 또다시 커다란 하나의 단일한 음향 복합체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주요음향 기법' 이다.특히 관현악곡에서 이 음향 복합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된다. 악기 그룹들끼리 서로서로 확연히 분리된 주요음향층을 만들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흘러가기도 하고, 서로 융해 되기도 한다. 그 결과 그의 음악은 종종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서 움직이는 음의 복합체를 경험하게 되는데 상위의 차원은 큰 덩어리, 즉 전체음향의 움직임인데 그것이 바로 주요음향이고, 하위의 차원으로는 그 음향 내부에서 분주히 활동하며 생동화하는 형상들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정중동(靜中動, movement within quiescence)과 다음에 설명될 대우주 안의 소우주(microcosm within macrocosm)의 도교 원리에 모상을 두고 있다.
아래의 [예 12]에서 볼 때 각 악기는 각기 다른 주요음(여기서는 2마디 단위로 바뀌지만)을 갖고 주변 음들이 파상운동과 그 자신의 트릴운동을 통해 음향의 복합체를 일구어낸다. 이러한 각각의 음향복합체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통합된 음향인 주요음향을 이룬다. 그러나 이 악보의 경우 목관과 타악기는 같은 움직임을 갖으나 금관악기는 다른 움직임과 다이나믹 변화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개의 경우 각각의 개별 음은 주요음(음향 복합체)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악기그룹별로 2개 또는 3개의 중간 크기의 주요음향을 형성하고 나아가 그것들은 다시 하나의 커다란 주요음향을 이루는 3개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적 전통에 근거한 모방적 의미의 폴리포니는 아닐지라도, 의식적으로 조절되어 형상화된 다중적 차원의 다이나믹 폴리포니(dynamic polyphony)와 음색의 폴리포니(sound polyphony), 그리고 내부의 빠른 움직임과 외부의 원거리에서의 조망에 의한 느린 움직임의 시간의 대위까지도 발견할 수가 있다.
윤이상이 주요음 기법이나 주요음향 기법을 그의 작품에서 실현시킬 즈음(1950년후반에서 1960년대) 유럽의 작곡계는 때마침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가 창안한 음열주의 음악이 그 한계성에 직면하여 작곡 방식의 주도권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유수의 작곡가들은 표현의 다양성을 위하여 새로운 음악 소재를 찾기에 부심했는데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해 볼 수가 있다. 첫째가 이국적이거나 동양 음악에 대한 관심인데 프랑스의 작곡가 메시앙(Olivier Messian)을 필두로 불레즈 (Pierre Boulez), 스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등은 인도 음악의 리듬과 선법 체계 등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하였고, 존 케이지(John Cage)는 중국의 역경(易經, I-Ching)을 토대로 한 '우연성 음악'을, 펠트만(Morton Feldmann)은 인도 불교철학인 선(禪)을 차용하여 명상적 음악을 만들었다. 두 번째 부류로서는 헝가리 출신의 리게티(Gyorgy Ligeti)와 폴란드 출신의 펜데르츠키(Krzystof Penderecki)를 중심으로 한 '음색작곡'(Klangfarbenkomposition)의 방식 또는 '음향면작곡'(Klangflachenkomposition)이라는 새로운 작곡 방식을 개발한 작곡가들이다.
[예 12] 윤이상, 첼로협주곡 (1975/76), 134-136마디, 현파트 제외
이러한 작곡 양식의 일대 변환 속에서 윤이상이 시도한 동양 사상을 토대로한 음악의 세부 구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된 '주요음향기법'은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독창적 어법을 가진 세계적 작곡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음향적 측면에 있어 유럽의 음색작곡가들과 다른 점은 리게티의 경우, 그의 음악은 수많은 개별음들의 움직임들은 하나의 그물과 같은 엄청난 밀도를 가진 음향체를 형성하나 개별음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펜데르츠키의 경우도 하나의 '음다발'(Tonecluster)을 형성시키는 것이 관심사이지 내부의 움직임을 이루는 개별음은 잡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윤이상의 경우 아무리 커다란 음향체가 있을 지라도 그 속에는 또다른 음향체가 있고 또 있어 그 핵에는 독자적으로 살아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개별음이 있다. 그러므로 많은 이론가들은 윤이상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무수한 의미있는 내부 움직임으로 가득찬 '음향복합체'(Tonkomplex)이며 여러 색깔의 음들로 직조되어진 '음향양탄자'(Sound Carpet)라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내부의 움직임을 결정짓는 개별음들이 독자적 움직임을 취하고는 있으나 선적 형태가 같은 원칙 또는 그 많은 흐름의 하나하나가 동일성을 가지므로 서로가 모인 음향은 잘 조화된 단일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는 것이며 이것을 윤이상이 이른바 '주요음향기법'이라 하였다.
(5) 대우주(Macrocosm)와 소우주(Microcosm)
도교에서 인간은 항상 우주 대자연의 영원하고 순수하며 항상 생성과 변화를 거듭하며 흘러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순응하고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자연 중심적 세계관을 말한다.노자의 음악 사상을 계승한 장자는 더욱 적극적인 음악 사상을 펼치는데, 도를 우주 만물의 근원이며 생성과 변화의 총체로서 간주하고 특히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였는데 음악미의 본질을 마음 속에 순수하고 진실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에 두어 인위적이거나 화려하게 수식된 것 보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에서 나온 평온하고 화평한 것을 음악미의 표준으로 삼는 심미적 음악관을 가졌다. 장자는 무위자연의 조화로운 생성 변화의 모습이 느껴지며 도의 경지로 이끄는 함지지악(咸池之樂)을 말하며 이러한 음악은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보려 해도 그 모습은 보이지는 않지만 온천지에 가득 차고 드넓은 우주를 감싸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도교에서는 우주의 본체를 '악(樂)'의 본체이자 본질로 이해하고 있는데 여불위(呂不韋)의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음악의 유래는 멀고 아득하니 도량(度量)에서 생겨나며, 태일(太一)에 근본한다. 태일은 천지를 생산하고 천지는 음양을 생산하며, 음양의 변화는 만물을 생산한다.
완적(阮籍, 210-263)은 <악론>(樂論)에서 우주의 전체가 음악이며, 음악이 조화로우면 만물 또한 조화로워질 수 있다고 하였다.
무릇 악이란 천지의 본체이고 만물의 본성이다. 그 본체에 합하고 그 본성을 얻으면 화하고, 그 본체와 떨어지고 그 본성을 잃게 되면 어긋난다. 옛날에 성인이 악을 만든 것은 장차 그것으로써 천지의 본체를 따르고 만물의 본성을 이루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천지팔방에 음을 제정하여 음양팔풍(陰陽八風)의 소리를 맞추었고, 황종중화(黃鐘中和)의 '음률'을 고르게 하여 여러 만물의 정기(情氣)를 열었다. …이에 풍속이 변화하여 악에 동화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도이고, 악의 비롯된 바이다.
윤이상은 그가 남긴 개개의 작품을 결코 형식적으로 완결된 하나의 형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1993년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한 강의에서 윤이상이 말하기를 우주공간에는 음향으로 가득차 있는데 작곡가는 각각의 방법으로 음들을 받아들여 음악을 만든다. 이것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우주로부터 주어진 한 단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모두 하나의 중단없는 음악의 연속적 행렬로 보았다. 이러한 열린 형식적 구상은 '전체는 부분 속에 있다'라는 도교 철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윤이상의 작품은 음의 조직에서부터 선율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물론 구성이나 전개 방식의 차이는 있겠으나, 곡들 간에는 거의가 비슷하여 한 작품의 일부를 다른 작품 속에 삽입하여 들어도, 결코 이질적이지 않게, 문맥이 통한다. 그의 개개의 작품은 그의 작품 전체를 말하고 나아가 개개의 작품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일괄된 커다란 그의 작품으로서의 세계를 이룬다는 말이다. 또 이것은 도교의 근본원리인 "도에서 생겨났다가 죽음 뒤에 다시 도로 귀환하는 인간의 생명처럼 하나의 곡도 역시 무수한 음악의 가능적 실현태들 가운데 한 통일체로서 나타나는 일시적 고착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렇게 체현되어 나타나는 곡은 다른 모든 가능적 실현태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1959년 7월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한 윤이상은 귀국하려 하였으나 그해 9월에 네덜란드의 빌토벤(Billthoven)과 독일의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열리는 현대음악제에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작품 과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 을 각각 출품하여 성공적으로 유럽 악단에 데뷔하였다. 이 두 작품은 12음 기법에 의거해 작곡되었는데, "12음에 주어지는 엄격한 균등성과 서열의 해체 등은 그가 추구하는 음악(주요음 기법 등)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12음 기법을 수용한 것은 순식간에 음계 전체를 포함한 음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으며 그것은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는 도교의 사상과 상통하기 때문이었다. 윤이상은 12음 기법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극단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목적에 따라 변화를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반복을 통해 소리의 그룹들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윤이상이 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매우 적극적이다. 거의 매음표는 음색이나 음량 변화의 기호들을 수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별음들로 하여금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게 하고 그것은 나아가 더 큰 차원의 변화와 움직임을 형성하게 하는 일원으로 작용케 한다. 예를 들어 그의 강약법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많은 경우에 있어 '다수 속의 일원'과 '일원 속의 다수'의 도교적 패턴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다음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강약법의 윤곽을 도표로 그려 보았다.
[예 13]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 (1975/76), 49-65마디, 124-141 마디
그의 대다수의 작품이 그렇듯이 첼로 협주곡 에서도 음과 리듬의 끊임없는 쌓고 허물어지는 과정 속에 다이나믹이 함께 가세하여 음악을 극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a.에서 보는 바와 같이 ppp에서 ff 로 변해 가는 큰 차원 속에 미세한 크고 작음을 반복하는 내부적 차원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b.에서는 외부적으로는 포르테의 음량으로 지속되나 내부에서는 역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맺으면서
윤이상의 작품과 동양, 특히 한국 문화 전반과의 관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흘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은 그의 음악의 목적이 한국 음악이나 동양의 정신 세계를 나타내는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소속된 조국의 문화 유산과 정신 세계를 바탕으로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어법을 개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음악에는 그 누구와도 구별되는 심미의 세계가 있고 동양적 사고와 한국 음악 전통의 수동적 전환이 아닌 그 자신의 미학적 가치관이 주도된 자율의 세계가 있다. 그 자신만이 가지는 새로운 경지 그것이 바로 그의 음악이 가지는 가치이다.
많은 사람들은 윤이상의 음악을 서양 음악에 한국 전통음악을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윤이상의 음악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그의 음악에 내재된 한국 음악적 요소를 단지 소재적 관점에서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이상은 그의 음악이 그가 한국인이라는정체성을 나타내게 하는 것에 그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그의 음악을 쓸 뿐이라고 누차 역설하였다. 예를 들어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가 쓴 [상처입은 용]에서도 윤이상은 "나는 도대체 내가 서양 음악을 하는가 동양 음악을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써야 하는 음악을 쓸 뿐입니다."라고 했다.
이 글에서는 필자는 주로 그의 음악과 동양 사상과의 관계를 살펴 보았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동양 사상 그것보다도 훨씬 더 포괄적인 복합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가 표현하는 음악은 그 자신의 신념이요, 윤리이며, 양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그의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은 정의로운 국가, 질서 있는 사회, 이념을 넘어서 서로 도우며 하나되는 민족, 그리고 나아가 온 세상이 평화로워 져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것들의 표현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종교나 철학이나 음악 기법도 수용한다. 그것이 불교든, 기독교든, 도교든, 유교든, 동양음악 기법이든, 서양 음악 기법이든 경계를 두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그의 사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철학과 종교, 사회와 정치 등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그의 작가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은 그의 음악이 누구나가 들어도 '한국 음악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한국 음악의 소재가 원색적으로 나열된 그런 류의, 음악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윤이상의 음악에 대한 대다수의 국악인의 반응은 "그의 음악은 한국적 음악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런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윤이상의 음악이 한국 음악의 많은 특징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는 하나 그가 사용한 악기 취급법이나 음악 어법이 서구의 현대 음악의 표현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적 요소는 그의 음악에서 내재율로 자리하여 전통 음악에 젖은 국악인들에게는 당연히 낮선 음악으로 들릴 것이다. 윤이상은 한국음악을 그의 창작의 일부로 수용함에 있어 그 소재나 양식보다는 정신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그의 음악의 분석적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은 음을 선택하거나 악기를 투입하는 문제에서부터 화성의 조직과 선율의 움직임에 관한 문제 등 아주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반영은 그의 음악에 대한 지성과 미학적 통제를 통하여 어느 특정한 전통 음악에서의 귀에 익은 느낌을 제거하여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이라는 기치 아래 한국적 소재나 양식이 언뜻 드러나지 않는 그런 작품에 대해서는 작가의 민족성의 결여로 몰아세우곤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 우리는 윤이상이 접근한 창작의 방법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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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19:34:52, Hit : 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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