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인접예술론 계간 시 전문지 ‘신생’ 1999 창간호에서
윤이상의 음악과 동양사상 (1)
김철화
시작 하면서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78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윤이상을 잉태한 그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 용은 경남 산청군 정면에 있는 지리산의 하늘 구름 속에서 맴돌다가 끝내 하늘 높이 승천하지 못하였다. 원인은 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이상이 7, 8세 되던 무렵 어머니는 자신이 꾼 꿈이야기를 윤이상에게 들려 주었다. 훗날 윤이상은 이 태몽을 바탕으로 시작되는 그의 자서전적 첼로협주곡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Orchestra, 1975/76)을 통하여 자신의 운명과 인생 여정을 서술하였다.
강렬한 기세로 포효하며 뿜어대는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향 속을 아래위로 휘저으며 타협과 동화되기를 거부하며 마침내 하늘 높이 비상하는 하나의 음(音)을 내보내는 첼로, 그것은 절대적 자유와 순수,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절대높이의 A音에 도달하기 위해 치솟는 절규이며 갈망이다. 시작 부분부터 끊임없이 A음에 도달했다가 허물어지고 또 그것을 찾아 다시 상승을 시도하는 것의 연속적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1/4음이 모자라는 A음까지만 도달한 채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며 첼로 독주는 끝나고 그를 대신해서 오보에(Oboe)와 트럼펫이 완연한 A음을 울리는 가운데 그의 곡은 끝난다.
그가 타계하기 20년 전의 이 작품은 그가 그때까지 살아온 세월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그의 운명, 이미 그의 태몽이 예견한 '상처입은 용'의 배회와 그것이 승천을 시도하다 끝내 이루지 못하는 그것, 까지도 그려낸 듯하여 애잔하기까지 하다.
윤이상은 1917년 빼앗긴 나라에 태어나 한국이 경제적으로 수탈당하고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며 문화적으로 일본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자라났다. 젊은 시절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투옥되거나 배고픔과 공포를 안은 채 도피의 날을 보내다 해방을 맞고 조국의 불쌍한 고아들을 돌보다 한국동란을 겪는다. 1955년 서울시 문화상 수여를 계기로 1956년 39세의 나이에 3년 계획의 유럽 유학길에 오르나 1967년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친북 및 이적 행위의 혐의로,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납치되기까지 유럽에 있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년 반 동안의 옥고와 고문 끝에 미국의 엘리어트 카터(Elliot Carter),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등 181명의 세계적 명망이 있는 음악가 및 지식인이 서명한 항의문과 그들의 구명 운동으로 풀려나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 국적을 얻어 하노버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교수로서 가르치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국땅에서 조국의 불합리한 정치 상황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조국 분단의 아픈 현실을 이데올로기의 차원을 넘어선 진실한 애국자와 민족주의자의 모습으로 중재하기를 자청하고 가능한 방법을 동원, 화해의 길을 모색하였다. 윤이상은 예술이 현실 세상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참여적 예술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는 서독의 초대 대통령인 Thedor Heuss의 "정치는 예술을 대신할 수 없지만, 예술은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가 풀지 못하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예술이라는 순수로 풀어 보려 하였으며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확신하며 북쪽의 예술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동시에 예술은 시대 정신을 간파하고 옹호해야 한다. 예술은 시대 발전, 역사의 정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예술가 앞에 부정의와 거짓이 놓여 있다면 그 예술가는 우선 그것부터 극복하는 일에 나서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롯 예술은 창조된다. 왜냐하면 예술가란 그 본래의 속성이 감성적이고 정의감에 불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서는 불행하였으나 음악으로는 거장의 반열에 선 그의 영광의 행적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 보면;
1964년 미국 포드장학생으로 선발 되어 경제적 후원을 받게 되었고,
1968년 수감중 서독 함부르크 자유예술원의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70년 독일 킬시가 주는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오페라 심청 (1971/72)을 초연하여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1973년 베를린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77년 베를린음악대학 정교수가 되었으며,
1985년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을 수여했으며,
199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있은 국제현대음악협회(IGNM) 총회에서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이는 전세계를 통틀어 8명에 불과하다.)
1992년 함부르크 자유예술원으로부터 공로상(plakette)을 수여했고, 1995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상을 수상했으며, 그외에도 1972년에 이미 독일에서 출간된 {쇤베르크에서 펜데르츠키까지}(Josep Hausler저)에서 유럽 현존 5대 작곡가, 1995년에는 독일 자아르브뤼겐(Saarbrucken) 방송에 의해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2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독일의 음악학자 Christian Martin Schmid는 "윤이상이 유럽에 등장한 것은 음악사적인 행운이다." 하였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윤이상과 같은 존재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동양에서는 단 한 사람 존재하는 천재 작곡가이다."라고 평하였다. 1992년 윤이상 탄생 75회 기념축제가 독일을 중심으로 20곳 이상에서 열렸으며 그 중 일본에서 열린 축제 마지막날(1992년 11월 26일) 강연에서 일본의 중진 작곡가 니시무라 아끼라는 윤이상의 창작 세계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동양과 서양에 걸쳐 서 있는 윤이상, 그의 양안(兩眼)은 불변의 미와 철리(哲理)를 주시하며 동시에 격하게 변동을 계속하는 현대 사회와 인류의 고뇌에 뜨거운 시선을 부어오고 있다. 그에게서 나오는 음악은 앞으로도 누구든 유(類)를 같이할 수 없을 '강한 힘'을 절대로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윤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와 정치와의 관계를 알아야하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음악과 동양사상과의 관계를 알아야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음악과 정치 그리고 동양의 사상은 별개의 것이 아닌 모두가 하나이다. 그의 음악이 그의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이유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이 한결같이 말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이치처럼 순리에 맞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며 살라는 것에 대한 실천이다. 실제로 윤이상은 그의 음악을 통해 우리 현대인들에게 인간과 자연 등에 대한 많은 원리를 담은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음악을 통해 인간을 교화시키려는 이러한 경향은 교훈과 인간 교육의 의도로 행해져온 유교적 음악관을 담고 있다. 윤이상의 음악은 동양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유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불교, 샤마니즘, 나아가서는 기독교 사상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사상이나 종교는 단지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의 궁극적 목적은 여타의 종교와 철학을 섭렵한 그의 작품을 통하여 더욱 심오한 인간의 원천적인 문제를 규명하려 하였다는 점이다. 1992년 그의 75회 기념 초청강연에서 윤이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있어 작곡이란, 비밀을 찾고 발견하는 실험의 나라이다. 60년대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서너 개의 작품 안에서 안주한 적이 없었으며,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나는 이제 더욱더 근본적인 것에 나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는데, 이는 더 많은 평화,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많은 순수(純粹)와 온정(溫情)을 이 세상으로 지어 나르기 위함이다.
그는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의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토대로 그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개인의 문제와 조국과 민족의 문제를 성토하고 나아가 그것을 세상사의 차원으로 승화시켜 세계 인류를 향해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정신 세계와 음악관을 서양 음악어법으로 융합하여 세계적 음악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동양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이 시대 최고의 명성을 누려온 그는 4개의 오페라와 5개의 교향곡을 포함한 150여 작품을 남겼다. 그렇다면 과연 동양 사상의 어떠한 점이 윤이상의 음악과의 관련이 있는지를 본 논고에서는 공자와 도교의 음악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유가의 음악사상은 춘추전국시기(770-221 B.C.)의 공자(孔子, 551-478 B.C.)로부터 비롯되어 기원전 5세기 공손니(公孫尼, B.C. 498?-?)의 <악기(樂記)>와 기원전 3세기 순자의 <악론(樂論)>으로 발전되고 한(漢, 206-B.C.-220 A.D.) 초에 이르러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으로 집대성되었다. 유가의 음악 사상은 소리(聲)와 음(音)과 악(樂)에 대한 단계적 구분을 하고 악(樂)의 근본이 되는 음(音)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강조한다. 전체 문장을 통하여 악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악기>의 시작 부분은 이러한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채로 소리의 일어남은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사물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사물에 감촉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聲)로서 나타나고 소리가 서로 응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는 일정한 곡조를 이루니, 이것을 음(音)이라 한다. 음을 가지런히 모아 악기에 담아서 연주하고 또한 간척(干戚, 武舞에 쓰는 도끼)이나 우모(羽 , 文舞에 쓰는 꿩의 깃과 쇠꼬리)를 잡고 춤추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악은 윤리와 통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리만 알고 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금수이고, 음만 알고 악을 모르는 것은 일반 서민일 뿐이다. 오직 군자만이 악을 능히 알 수 있다. <예기(악기편)>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소리는 '음'(音)으로 변화될 수 있으나 음이 '악'(樂)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예컨대 '음'이 '악'이 되기 위해서는 악기와 춤이 함께 있어야 하고, 또 그 '음'은 사람에게 미적 감동 외에도 윤리나 도덕적 내용을 표현해야 한다. '음'과 '악'으로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윤리와 도덕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교육적 수단으로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공자의 근본 사상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천 철학으로서, 그 핵심은 이상적 전인격체이며 유덕자(有德者)인 군자(君子)의 도(道)를 가르치는 것이다.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서도 공자는 음악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아래의 글에서 인격 수양의 가장 높은 단계가 음악임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詩)에서 감흥받고, 예(禮)로서 규범을 세우며, 악(樂)으로서 정서를 완성한다. <논어(태백편)>
자로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의 지혜, 공작의 청렴, 변장자의 용기, 염구의 재능을 갖추고 예악으로 세련하면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헌문편)>
철학가이며 정치가이며 교육자였던 그는 매우 넓은 안목으로 음악을 바라보았다. 직접 노래를 했으며 슬(瑟), 금(琴), 생(笙), 경(磬) 등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음악에 대해 실천적인 사람이었다. 놀라우리만큼 음악을 최상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아래와 같이 수사적 표현을 하였다.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실 때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배우시매 석 달 동안이나 고기맛까지 잊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음악이 이렇게까지 훌륭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하셨다. <논어(述而편)>
공자의 음악사상은 통치계급의 이익에서 출발한다. 음악으로 민심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음악정책은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음악이란 성인이 즐거움을 얻는 수단이며, 민심을 선도할 수 있다. <논어(양화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논어(季氏편)>
음악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음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공자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라의 음악이 바로 서지 않으면 백성들이 혼란에 빠질뿐만 아니라 나라의 질서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올바르지 않으면 말에 조리가 없고, 말에 조리가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맞지 아니한다. 형벌이 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놀릴 수가 없다. <논어(子路편)>
공자는, 모든 음악을 좋아하고 장려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심성을 도덕적으로 잘 순화시킬 수 있는 예악(禮樂)을 으뜸으로 치고 민간의 음악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그는 순(舜)나라의 "소무"(韶舞) 음악을 좋아하고 민간 음악이 주를 이룬 정(鄭)나라의 음악은 음란하다 하여 배척하였다.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달력을 쓰며, 은나라의 수레를 쓰고,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고, 음악은 소무(韶舞)를 쓸 것이되 정나라의 음악은 몰아내고, 아첨배는 멀리하라.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하고 아첨배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논어(衛靈公편)>
<악기>는 구체적으로 각 음(音)과 그 음들이 상징하는 것을 기술 하면서 음악이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므로 음을 신중히 다루어야 함을 말해 준다.
궁(宮)은 임금이 되고, 상(商)은 신하가 되고, 각(角)은 인민이 되고, 치(徵)는 일(work)이 되고, 우(羽)는 물건(사물)이 된다. 이 다섯 가지가 어지럽지 않으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음(音)은 없을 것이다. 궁음이 어지러우면 악의 소리가 거칠다. 이는 그 임금이 교만하기 때문이다. 상음이 어지러우면 소리가 기울어진다. 이는 그 신하가 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음이 어지러우면 소리가 시름에 차 있다. 이는 인민이 원망하기 때문이다. 치음이 어지러우면 소리가 슬프다. 이는 그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우음이 어지러우면 위태롭다. 이는 그 재화가 궁핍하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어지러워서 서로 능멸하는 것을 만(慢)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되면 나라의 멸망이 몇날 남지 않을 것이다.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음은 난세의 음이니 만(慢)에 가깝다. 상간복상(桑間 上; 위나라의 땅을 일컫는 말)의 음은 망국의 음이다. 그 정치가 흩어지고 그 백성이 유리(流離)한다. 윗사람을 속이고 사악을 행하여도 제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예기(악기편)>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후세의 유가 철학자들 역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깊이 있게 주장하였고 나아가 음악이 인간 정서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간과하지 않았다.
무릇 간사한 소리는 사람을 느껴서 역기(逆氣)가 이에 응하고, 역기는 형상을 이루어서 음란한 악이 일어난다. 바른 소리는 사람을 느껴서 순기(順氣)가 이에 응하고, 순기는 형상을 이루어서 화평한 악(樂)이 일어난다. <예기(악기편)>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악기>에서 말한 것처럼 '음'(音)을 아는지의 여부에 따라 '서민'과 '금수'가 구별되고, 다음 단계로 '악'(樂)을 아는지의 여부에 따라 이상적 인격자인 '군자(君子)'와 일반 서민을 구분지었으므로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인간의 차별적 등급이 발생한다. 한편으로 통치자만이 좋은 음악을 제정할 수 있다고 보아 현실을 반영하고 일반 노동인민이 만든, 노동인민 생활을 담은, 음악을 모두 배척하였다. 이러한 점에 대해 도가(道家)는 유가(儒家)의 음악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을 인위적으로 구획하고 획일화하며 서열화하는 것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악'(樂)이 백성의 교화와 지배자의 통치의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성의 자연스런 발로이어야 함을 주장하며 비판한다.
한 마디로 공자의 음악사상은 음악을 도덕적이며 완전한 인격체를 만들기 위한 교육적 가치로서 사용하였고 정치적인 측면으로 볼때는, 지배자의 통치에 필요한 효용성을 위해, 통치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질서를 몸에 익혀(예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백성교화를 이루고 나아가 나라의 통치 질서의 확립에 그 목적을 두었다.
공자의 음악사상과 윤이상의 음악과의 관계
윤이상의 음악에서 공자의 음악사상과의 관련성은 그의 음악이 도교사상과 밀접히 연관된 것에 비해 많이 약한 듯하다. 그것은 그의 작곡기법이나 음악어법이 구체적으로 도교적 원리에 입각한 것과는 달리 공자의 음악 사상을 하나의 관념 또는 정신적 측면에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의 음악을 깊이 분석해 보면, 그의 음악이 유가에서 말하는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메시지를 담은 점과, 유가의 음악사상을 그대로 적용한 한국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던 여러가지 작곡기법이 그의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몇 가지 관점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갖고 있는 유가적 음악 특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기능적 악기배치(Fuctionalization of Instrumentation)
윤이상의 관현악법은 한국의 전통 아악(雅樂)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 우리의 아악을 대표하는 문묘제례악(文廟際禮樂)과 종묘제례악(宗廟際禮樂), 그리고 영산회상(靈山會上)과 수제천(壽齊天) 등은 공자의 예악(禮樂) 정신을 본떠서 만든 음악인데, 악기의 사용법과 악기군별로 역할을 분담시키는 것과 선율진행 패턴과 음군과 음군의 연결에 있어 연음법(連音法; 악기군별로 선율을 이어가는 기법)을 쓰는 것 등은 윤이상의 음악에 많이 도입되었다.
우리 전통 아악의 경우 악기법(Instrumentation)은 그룹별로 분리되어 각각의 역할이 주어진다. 아래 악보의 수제천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음향은 목관 그룹, 타악기 그룹 그리고 현악기 그룹(해금, 아쟁)의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적 의미의 대위를 염두에 둔 폴리포니(Polyphony)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음이 아닌 동일한 음정을 중심으로 각 그룹내에서 흐름의 선을 따라 헤테르포니(Heterophony)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음진행에 있어 서로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나아가 하나의 단일되고 통일된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악기군마다의 기능이나 과제를 부여함으로써 전체를 지배하고 질서를 갖추려는 유교적 체제에 부합되는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이다.
[예 1] 수제천 , 시작부분
그림
[예 2] 윤이상, 첼로협주곡 , mm. 39-42
윤이상의 음악은 이러한, 비록 듣는 자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철저하게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고려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각 악기군들에 내용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악기 또는 악기군을 '절대' 음악적 음향의 질(質)의 관점에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음악 외적인' 의미 내용을 고려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향의 질과 윤리적, 철학적 사고를 결합하는 생각을 잘 나타낸 대표적 예로서는 그의 관현악곡 차원 (1971)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관악기와 타악기가 악마의 '지하 세계'를, 현악기와 목관악기는 중간의 '지상 세계'를, 그리고 오르간이 '하늘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예2]의 악보는 윤이상의 첼로협주곡 (1975/76)인데, 잘 관찰해 보면 우리 나라 전통 아악(雅樂)에서 볼 수 있는, 그룹별로 확연히 나누어지는 과제 분담 형식의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을 확인할 수가 있다. 각 악기 그룹별로는 비슷한 음형이 전개되나 그룹별로는 서로 다른 음악적 기능이 부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첼로의 독주는 숱한 시련을 겪으며 좌절을 당하나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절대적 순수와 자유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작곡가 자신을, 오케스트라는 그를 둘러싼 여러가지 주변 환경을 나타내는데 이는 다시 적대자(enemy) 그룹인 금관 및 타악기군과, 동조자(helper) 그룹인 현악기 및 목관군으로 나누어져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간다. 악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첼로는 엄청난 위력의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당당히 맞서 아래에서 위로의 아주 넓은 음역을 순식간에 섭렵하며 상승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조자의 역할을 맡은 현악기 그룹은 하모닉스로서 높은 음역의 아름다운 음향과 비교적 온화한 화성과 약한 음량(dynamics)으로서(물론 Doublebass는 아주 낮은 음역에서) 독주의 흐름을 순탄케 해주는 배경이 된다. 목관 악기 중에서 피콜로(Piccolo) 그룹은 확실한 동조의 역할을 하는데 현악기군에서와 같이 독주 첼로의 음역보다는 아주 높은(피콜로는 기보된 음보다 한옥타브 위의 소리가 남) 소리와 부드러운 음량으로 현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나머지 목관 부분은 적대자도 동조자도 아닌 애매한 분위기이다. 금관은 음량의 변화가 심하며 충동적이며 파괴적인 분명한 적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39마디에서 40마디에 걸쳐 힘찬 음량과 함께 결연한 상승의 움직임을 보이던 첼로는 41마디에서의 엄청난 힘으로 엄습하는 금관의 훼방적 음향 앞에 멈춰선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금관파트가 차지하는 음역은 독주 첼로와 같은 음역이며 그것들이 구성하는 화성 역시 굉음과도 같은 극도의 불협화음들이다. 뿐만 아니라 39마디부터 서서히 커지면서 41마디에 가서는 마치 첼로를 집어삼킬 듯 폭발적 음량을 쏟아낸다. 그러나 이내 일어서 다시 투쟁하는 전사처럼 첼로는 전체와 맞서 당당한 소리를 뿜으며 나아가는데 이러한 형상을 거듭하는 것이 대략적 이 작품의 일괄된 흐름이다. 그리고 이 악보에서는 타악기가 간헐적 타주를 하고 있는데 동요와 불안을 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작품에서는 처음에서 끝까지 치밀하게 조직되고 계산된 하나의 가사 없는 음악극을 보는 것같은 음악적 이야기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그의 고도의 극 구성술은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다. 한편, 이는 그가 한국 궁정의 예악이나 귀족을 위한 정악(正樂)에서 사용되던 악기군의 역할 분담 형식을 확대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예 3] 악기의 기능과 역활
위의 도표는 윤이상과 그의 음악의 이론가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윤이상의 음악에서 악기군 또는 악기가 나타내는 음악 외적인 의도를 정리해 본 것이다. 반드시 그의 모든 음악에서 아래의 도표와 같은 기능으로 악기가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그의 음악은 아래의 모델을 닮아 있다.
도덕적 의미, 교훈과 교화(Music has a Moral Meaning)
<禮記>의 악기(樂記)편은 음악의 제작자가 어떠한 이유로 '악'을 제정했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데 한 마디로 '악'의 제작 목적은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왕은 그 감동되는 바를 신중히 하였다. 그리하여 예로서 그 뜻을 이끌었고, 악으로서 그 소리를 조화시켰으며, 정치로서 그 행동을 하나로 만들었고, 형벌로서 그 간교함을 방지하였다. 이렇듯 예악형정의 네 가지는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 이르는 궁극은 하나이다. 즉 모두가 민심을 가지런히 하여 치국 평천하의 도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이 예악을 제정함에 있어 입과 배와 귀, 그리고 눈의 욕심을 다하게 하지 않고, 장차 백성으로 하여금 그 좋아하고 싫어함을 공평하게 하도록 가르쳐, 올바른 사람의 도리에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예기(악기편)>
여기서 선왕이란 유가에서 말하는 이상적 통치자로서, 그들의 통치에 필요한 행위 규범과 가치 체계를 가장 이상화하여 제도화한 '예'와 '악'을 친히 몸으로 체득한 군자이며 유덕자로서, '악'의 제작의 주체를 일컫는다. 송대의 철학자 주돈이(1017-1073) 역시 '음악이 정치를 반영한다고 보았으며 통치자는 음악의 창작자이며, 정치상 공적을 이루어야 평담(平淡)하고 조화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담은 욕망을 식히는 데 도움이 되고, 조화는 조급한 심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이런 음악은 인민을 교육할 수 있으며, 그들의 심기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위진 시대의 관념론적 음악 사상가 완적(阮籍, 210-263)은 그가 쓴 <악론(樂論)>에서 음악이 조화로우면 만물을 조화롭게 일치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음악은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쓰여지므로 통치자(聖人)가 창조한 연후에 백성에게 보급해야 하고, 백성들 임의로 음악을 창조하거나 고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선왕이 음악을 만들매 그것으로서 만물의 정을 고정시키고 천하의 뜻을 하나로 모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적절한 음과 평화스런 소리를 세우고 일에 편리를 주는 박자와 순종하는 춤을 제정하여 세상의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두 본받게 하였다.…… 악기는 천지의 모양에 연관되어 있으므로 함부로 만들 수 없고, 모든 것이 귀중한 악기의 소리와 같으므로 함부로 바꿀 수 없다.(완적의 <악론>)
결국은 질서 있고 조화로운 음악을 통해 감화받음으로써 인간 사회가 도덕적 질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악'(樂)으로서 '이풍역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이 사회를 향한 도덕적 교훈적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히 이러한 유교적 정신 세계에 연원한다. 상당수의 그의 작품은 정치적•사회적 사건이나 그로부터 받은 윤리나 도덕적 동기에 의해 작곡되어졌다. 1988년 윤이상은 한겨레신문 과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삶과 정신, 나의 예술은 정의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예술은 정의의 정신으로 이날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정의는 민족과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는 인도정신입니다. 인간과 인류에의 신뢰가 바로 평화이고 이 평화는 동양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교향곡을 다섯 개 썼는데 지난해 베를린시 750주년 기념 위촉 작품인 "교향곡 5번"을 사람들은 '평화의 교향곡'이라 부르고 있지요. 나의 작품에서 시종 흐르는 것은 바로 정의와 평화 정신입니다. 가난 한 조국에서 태어난 한 예술가로서 조국의 민주화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그리고 분단된 국토와 조국을 통일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한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전세계 특히 제3세계의 수난받는 민중에 대한 관심도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윤이상은 현실 참여에 아주 적극적 태도를 취하였고 시대 정신을 간파하고 양심과 정의를 위해 과감히 불의와 맞서서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하여 그의 음악을 접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의 음악 정신의 이러한 점이 바로 유가가 말하는 음악의 명교(名敎: 유가철학에서의 인간 사회의 도덕 질서 체계)적 효용성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중에서 교훈과 교화적 내용을 담은 대표적 곡들로는 먼저 대관현악을 위한 예악 (禮樂, Reak, 1966)을 들 수가 있다. 제목부터가 우리 나라의 궁중에서 연주되던 제의적 음악에 있는데 이러한 제의적 음악의 본질은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 공간과 인간 영혼의 노래가 하나로 합일되는 세계를 나타낸다. 예로부터 제례의식은 인간 특유의 행위로서 어떤 일에 대한 불안이나 분열을 몰아내고 기원이나 희망을 담은 사람과 사람 사이, 땅과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장소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틀로서 전해 내려왔다. 마치 우리네 제사 문화가 조상을 기리고 그들 자신들의 잘됨을 염원하고 자손들의 평안과 화합을 기원하며 행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이상의 '예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작품의 세부적 구조나 어법이 한국 전통 예악과 많이 닮아 있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제의적 음악이 주는 정신적 특수성, 즉 보다 진지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와 유대와 의사 소통, 사회의 갈등과 민족의 문제,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이루어 가자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의 음악은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 등 여러 관계의 상징으로서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이해의 결과이며, 우주 만물의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유교적 요청에 부합되는 것인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인간주의적 호소, 윤리적 메시지는 그의 음악은 그 자신의 수사법이다. 이러한 인간 교화적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 작품을 좀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교향곡 1번 (1983/84)은 핵전쟁의 위협, 파괴, 세계 몰락에 직면한 현실에 대한 호소와 경고를,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81)은 고통과 희망, 갈등과 해방, 강한 힘의 물줄기의 흐름과 같은 정의의 힘을, 무궁동 (無窮動, 1986)은 남한의 학생운동을 사회 개혁과 정의 실현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의 상징으로 반영을, 밤이여 나뉘어라 (1971)는 파시즘적 집단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만행과 불의에 대한 고발을, 칸타타 현자 (1977)는 압제자와 민중과의 갈등과 마지막까지 그 빛을 잃지 않는 선(善)을, 교성곡 사선에서 (1975)는 숱한 경악과 불안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인간의 영혼을, 피리 (1971)는 부당하게 수감된 죄수의 역경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의 표현 등을 담고 있다.
정치와 음악의 연결(Connection Between Polictics and Music)
1988년 윤이상은 한겨레신문 과의 대담에서 그가 고초를 겪은 '동베를린 사건'이 그로 하여금 음악이 '인간성에의 접근' 또는 '사회적 참여'의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 동기라 한다.
동베를린 사건 이전에는 나는 동양의 음악가로 동양적 정신, 동양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심미적 작품을 쓴 것이 사실입니다. 지식인적인 예술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나는 해방 전에도 항일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적도 있고 해방 직후에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선 바 있습니다. 나는 민족과 나라를 위해 내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개인적•집단적 체험은 민족 문제, 분단 문제를 더욱 구조적이고도, 깊이, 온몸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고, 작품으로 그것을 형상화시켜야 한다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억압받는 민족과 민중, 폭력과 붕의에 고통당하는 인류, 분단으로 빚어지는 모순, 민족의 통일 문제, 세계 평화의 문제, 제3세계 빈곤의 문제, 그리고 인간 불평등의 문제 등은 나의 삶, 나의 예술과 결코 무관할 순 없습니다. 나의 음악 예술이 도교사상 또는 동양정신에 토대를 둔다는 것, 동양인 또는 한국인으로서 생득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정신적 유산 또는 토대는 오늘의 세계와 인류, 조국과 민족이 당하는 문제와 결코 유리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윤이상의 작품이 정치적 색채를 갖게된 이유가 그가 겪은 동베를린 사건이나 개인적으로 당한 정치적 억압, 유린, 고통 및 분노를 표현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와 사회 의식의 문제를 담았던 그의 최초의 작품은, 동베를린 사건이 있은 지 10년이 지난, 1975년에 쓴 첼로협주곡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이때는 그의 정신 세계가 그가 겪은 동베를린 사건에서 치른 심한 인간적 상처가 개인 감정에서 순화되던 때이고, 또 세계 정세가 원폭 경쟁 속에서 많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첨예화된 때라고 했다. 윤이상은 1989년 음악동아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음악은 역사적으로는 나의 조국(민족)의 모든 예술적, 철학적, 미학적 전통에서 생겼고, 사회적으로는 나의 조국의 불행한 운명과 민족, 민권 질서의 파괴, 국가 권력의 횡포에 자극을 받아 음악이 가져야 할 격조(格調)와 순도(純度)의 한계 안에서 최대의 표현적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음악은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강한 힘이 있다.
그의 대표적 정치와 사회 참여적 작품들로는 사선(死線)에서 (1975),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5/76), 플륫 협주곡 (1977), 오보에•하프•소관현악을 위한 2중 협주곡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 (1977), 광주여 영원히 (1981),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1986/87),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983/86), 실내교향곡 자유에의 헌정 (1989), 교향시 염속의 천사 (1995)와 1982년부터 매년 한 곡씩 작곡한 5개의 교향곡 등인데 한결같이 불합리한 사회문제와 정치적 억압에 강력히 항의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류의 작품에서는 몇 가지 공통적인 음악적 수사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1. 상승 음형: 아래 악보 [예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윤이상 음악에서 선율의 모형은 끊임없는 상승의 자세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것은 집단적으로 나타나 언제나 밑에서부터 시작되어 계속 상승하면서 확대된 공간으로 나아간다. 윤이상 음악의 대표적 이론가인 볼프강 슈파러(Wolfgang Sparrer)에 의하면 윤이상에게 있어서 높은음이나 음역은 하늘을 상징하고, 상승 진행은 해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없이 휘감기고 교차되는 행렬의 솟아오름은 끊임없는 저항의 표시이며 상징으로서 듣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2. 충동 리듬: 리듬의 충동은 실제로 정치적, 사회적 운동에서 볼 수 있는 결연한 행진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가 조국의 비참한 상황을 뉴스로 목도하고 울면서 작곡했다는 광주여 영원히 (1981)의 리듬은 성난 민중의 혼란스러운 움직임과 그에 비해 조직적으로 진압 행진을 하는 군인들의 움직임과 총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 4]에서 보듯이 타악기의 폭발적 타주와 관악기들의 반복되는 음의 동작은 강력한 저항을 표현하는 그의 독특한 수법이다.
3. 극적 다이나믹: 윤이상은 그의 음악이 투쟁과 항거를 나타내는 장면일 때는 아주 긴 시간 동안 극도의 큰 음량을 부여한다. 무수한 음들의 움직임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고 순간적인 다이나믹의 변화는 아주 공격적이다. 그는 고전파 음악에서는 ff가 고작이던 음의 강도를 fffff까지 넓혀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음악 그 자체가 마치 항의하듯 이리저리 부딪히며 절규하는 것이다.
[예 4] 사선(死線)에서 (1975), 87-88 마디
그림
그의 이러한 표현은 유가 음악사상이 말하는 어지러운 시대의 분노에 찬 음악의 단편을 보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류의 그의 음악이 흥분만을 나타내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의 음악은 항상 분노와 항거와 혼란의 차원을 넘어 해방과 자유, 그리고 평화가 실현된 조화로운 악상으로 이끌어 우리로 하여금 정의와 순수와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무릇 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는 것이다. 감정이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를 나타나며, 소리가 문(文)을 이루니 이것을 음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잘 다스려지는 시대의 음은 편안하고도 즐겁다. 이것은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시대의 음은 원망해서 분노에 차 있다. 이것은 그 정치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망국의 음은 슬프고 생각하게 한다. 이는 그 백성이 곤궁함 때문이다. 성음(聲音)의 길은 정치와 통하는 것이다. <예기(악기편)>
윤이상은 그의 음악에서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에 대해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가 나타내려던 의도나 줄거리에 맞춰 감상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1984년 일본의 음악예술 (音樂藝術, 9월호)과의 대담에서 그의 작품에서의 스토리성은 절대 조건이 아니며 그 자신이 비록 어떤 내용을 가지고 곡을 썼지만 그것을 배제하고 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덧붙여 작가로서 창작에 있어 그런 판타지와 줄거리를 갖는 것은 커다란 힘이고 추진력의 근원이 된다고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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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19:32:45, Hit : 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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