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 강 기행 –전혜린
내가 본 도나우 강은 일회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강을 발견한 것이다. 세느 강을 실지로 보면 그 혼탁
한 데 실망을 느끼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가 보면 그 구정물 같은 데 환멸하고 만다는 말이 신문, 잡
지나 라디오에서 종종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도나우 강만큼은 일회적으로 아름다웠다. 내
가 그 곳을 가 본 것은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방학 중인 8월 말 뮌헨은 벌써 싸늘한 가을의 냉기가 풍기는
계절이었으나 빈은 한국의 삼복과 흡사한 뜨거운 기후였다. 따라서 자연히 시내 구경보다도 시원한 강변을
찾게 되는 것이다. 도나우 강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새 도나우'와 '옛 도나
우'의 두 강이 있는데 어느 쪽에 가려고 하느냐고 그들은 반문했다. 스트라우스가 왈츠 곡을 지은 도나우 강
말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옛 도나우 강'이라고 말하면서 자세하게 전차 번호와 내릴 곳을 가르쳐 주었다.
빈 시의 교외인 프라타자라는 유원지에서 전차를 내려 조금 더 길게 내려갔더니 뜻밖에 폭이 좁은, 그러나
에메랄드보다 더 푸른 새파란 강물이 고여 있었다. 강의 양 옆에는 버드나무가 축 늘어져 있어서 마치 커튼
처럼 보였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또 노래에서 듣던 곳보다도 그 강은 훨씬 더 순수하게 아름다운 파란 빛과
완전히 가라앉은 아늑한 고요를 지니고 있었다. 새파란 유리같이 매끄러운 물 위에 수많은 보트 ― 녹색, 흰
색, 하늘색 등의 곤돌라 모양의 갑삭하고 얇은 나무 보트가 떠 있는 것도 이채로웠고 강변의 버드나무 그늘
에 수없이 많은 작은 코테이지가 마치 비둘기처럼 귀엽게 다닥다닥 세워져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그 집들
의 빛이 또 모두 초록이나 분홍 등으로 색칠해져 있었고 창문은 대개가 하트 형으로 뚫려 있었다. 흰 레이스
커튼이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고 꽃이 만발한 마당이나 테라스에서 귀여운 빈 아가씨와 애인이 식사를 하거
나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나도 보트를 타고 떠내려가면서 강변의 재미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빈
사람의 쾌활하고 솔직하고 구김살 없고 거리낌 없는 대도회인다운 세련된 감각과 심미주의, 찰나적인 쾌락
의 추구, 그러면서도 한없이 호인이고 악의나 치사한 점은 티끌만치도 없는 성품이 무슨 계시처럼 일순간에
파악되었다. 그리고 슈니츨러의 작품에 흔히 나오는 저 '가련한 소녀', '약한 호인', '미워할 수 없는 탕아' 등
의 빈 사람의 기질을 새삼스럽게 음미해 보았다. 후에 알고 보니 이 요한 스트라우스의 작곡의 대상이 되었
던 강은 지금은 '옛 도나우 강'이라고 불리며 현재는 흐르지 않고 다만 호수처럼 고여 있기만 한다고 한다.
이 강 이외에 웅장히 흐르고 있는 새로운 도나우 강이 있는데 이 유럽 제 삼의 길이를 자랑하는 '새 도나우
강'은 도나우 운하라고 불리며 기선의 왕복이 무상하다. 이 바다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혼탁한, 조금도 낭
만이나 꿈이 깃들지 않은 현실적인 강을 보통 도나우 강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나우 위에
서의 뱃놀이는 유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에 반해서 말하자면 진짜 도나우인 옛 도나우는 옛날의 미와 우
아와 맑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가벼운 나무 보트밖에 못 띄우는 흐르지 않는, 호수로 화하고 만 것이다. 많
은 사람들이 혹시 낡은 도나우 강은 보지 않고 새 도나우 강만 보고 간 것이 아닐까? 그림이나 노래 속의 도
나우와 실지의 그것이 판이하다는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무언지 가슴이 아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누구
에게나 '프라타자의 버드나무 드리운 강변에 가 보십시오. 거기에는 우리가 꿈 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새파
란 물이 고여 있어요. 지금은 더 이상 흐르지는 않는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또는 내 눈에
도나우의 빛을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독일에는 이런 격언이 옛부터 있으니까. '도나우 강은 사랑하
는 사람의 눈에만 푸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도나우는 나만이 발견한 보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마음 속
에 고여 있는 흐르지 않는 파란 강물인지도 모른다. 다시 가서 나의 보석을 다짐해 보고 싶어진다.
|
(05.10⌒12:08:04, Hit : 1970)
|
DOORS INTO POE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