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수만사택 (春水滿四澤)
하운다기봉 (夏雲多奇峰)
추월양명휘 (秋月揚明揮)
동령수고송 (冬嶺秀孤松)
도연명
여러 시각에서 보다
계절이 흘러가는 창가에 앉아
가슴이 풍만한 여름의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가을의 남자가 군침을 흘리며 그 뒤를 따라가고
여름의 여인이 버려진 낙엽과 가을 남자 가슴팍을
함부로 밟고 지나가면
가을의 남자가 뜨겁고 날카로운 추억에 발바닥을 찔린 채
지나가는 것을 보는 나를
그 뒤에서 또 다른 내가 본다.
가을의 남자를 울리고 가는 여름의 여인.
여름의 여인을 울리고 가는
봄이라는 예쁜 소년의 황금 빛 머리카락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름의 여인
가을의 남자가 내 가슴을 함부로 밟고 급히 지나가는 것을
또 다른 내가 멀찍이 서서 보고 있으면
봄 미소년의 머리카락 향기가 나의 몸을 칭칭 감는다.
나와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는
각자가 서로 겨울 얼음판 위의 섬이기도 하지만
반나인 여름 여인의 허벅지에 내 이름 석자를 새기고
잊어야 할 것이 더 많은 이 세상에서
가을의 남자에게는 "레테의 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나를 관찰하는 또 다른 내가 봄의 햇살 속으로
힘차게 달리게 한다. 세월과 운명을 거스르는 기차를
끝이 안 보이는 계절이란 철로를 따라
단조로운 생을 말아 담배 피우는 염소가
봄의 미소년, 여름의 나부(裸婦)와 가을 남자와 겨울 새를
일렬로 데리고 바삐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건방진 꿈을 꾸어도 나는
인생이란 연극의 조연 배우일 뿐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창가에 앉아 나는
뜨거운 와이키키 해변 모래사장에서
여름의 나부와 함께 뒹구는 꿈을 꾸기도 하고
주연 배우인 세월이 가을 남자에게
축구 심판처럼 퇴장을 명하면
아픈 운명을 말아 담배 피우는 염소를 데리고
나를 데리고 제왕의 행차처럼 긴 행렬을 이룬 채
위풍도 당당하게 퇴장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또 다른 내가.
**김경수. <<다른 시각에서 보다>>, 하늘연못,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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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22:34:43, Hit :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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