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계단]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어스름의 시간이 내 몸을 식힐 때까지
김충규
물컹물컹한 산길에 접어들면
내 신발이 격렬함을 벗어날 수 있어 좋다
도시의 길 위에서
신발은 얼마나 격렬했던가,
발자국 한번 꾹 남기지 못하고
제 몸만 스스로 닳게 했으니
신발 없이 사는 새들아
인간은 신발 속에 갇힌 불쌍한 족속임을
너희를 보며 깨닫느니
내 오늘은 신발을 벗고 부르튼 발로
산길을 걷겠다
짧게나마 내 발을
홀가분하게 풀어놓겠다
점점 하산(下山)하는 산그늘을 뒤로 넘긴 채
산길을 걸어가리니
길이 아닌 곳도 길을 내어 걸어가리니
어스름의 시간이
내 몸을 식힐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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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22:52:05, Hit :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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