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론과 화론•2
―人物畵, 花鳥畵 및 詠物詩
정상홍 신생 제2호에서
1. 들어가는 말
[시론과 화론]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에는 산수화와 산수시를 통해서 시론과 화론이 접맥되는 부분과 과정을 거칠게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인물화와꽃과 새와 동식물 및 곤충 등을 화제로 삼은 화조화를 중심으로 '작은 자연' 또는 '소우주'를 대하는 화가와 시인의 자연관과 그를 형상화시키는 여러 과정 등을 비교해 본다.
산수자연을 대하는 화가나 시인의 관점은 우선 좀 더 넓은 세계를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이른바 거시적일 것이며, 이 '작은 자연'을 대하는 입장은 미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 대소원근(大小遠近)의 대상을 대하는 화가들의 관점과 장면 구성을 위한 노력이 기실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과 정신이 오랜 기간의 관찰과 수련에 의해 이미 화가 내면에서 배양되어 잘 발효된 상태라서 그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적절한 시기에 펼쳐내면 될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걸 "흉유성죽(胸有成竹)"이라고 한다. 화가의 가슴 속에 이미 온전한 대나무가 완성되어 있다는 것, 즉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대상의 형태와 구도 등의 제반사항에 대하여 충분한 마음 속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창작 과정으로 보면 "의재필선(意在筆先 : 뜻이 붓보다 앞선다)"으로 부른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이나 주제가 먼저 확립된 후에 붓으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농축되어 있는 대상의 "정신"은 화가 자신의 개성이라는 시공(時空)없는 원형질의 터널을 통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하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편의상 단순하게 1.관찰과 포착 과정 2.기교숙련 과정 3.개성 및 사상과의 융합과정 4.필묵에 의한 재현 또는 표현 과정으로 나누고 순수하게 화가의 기능적인 부분에 속하는 2와 4를 제외한 1과 3을 인물화 및 화조화에 적용시켜 보도록 한다.
동양화의 종류를 소재면에서 나누면서 그 발생 순서를 살펴본다면 인물화가 가장 먼저 생겨났고 그 다음이 산수화이며, 그리고 화조화로 칭하는 꽃과 새와 동물과 곤충 그림이 산수화에서 파생한 것으로 본다. 이 화조화는 대개 장식적인 세부 묘사에 한정되었던 셈이다. 그림의 외양을 풍부하게 하고 배경을 채우고 어떤 계절인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 것이다.
시대를 따라 표현 방법과 기능이 변화했는데 그 개략을 살펴보고, 같은 소재로 창작한 시에서의 표현법 및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기로 한다.
2. 회화에서의 자연 관찰법 --- 자연에 대한 기억과 이해
음악가의 생명이 귀라면 화가의 생명은 눈에 있으며, 자연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은 눈의 훈련에서 시작된다.
당 현종이 오도자(吳道子)에게 가릉강의 풍경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오도자는 가릉 지방을 둘러보고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현종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저는 비록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나 모두 마음 속에 담아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대동전의 벽에 3백리 가릉 지방의 풍경을 하루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대소 자연을 생동감 있게 화폭에 담기 위한 몇 개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동양화의 이해}(鎭兆復 지음, 김상철 옮김)의 한 부분을 필자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첫째는 걸으면서 보고 생각하면서 관찰한다. 즉 산이나 대상이 되는 사물의 모든 면면을 자세히 본다. 그러면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하나의 고정된 초점(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유모취신(遺貌取神), 즉 모양을 버리고 그 정신을 취한다. 전면적인 관찰을 하면서 동시에 대담한 취사선택, 즉 정신이 깃들어있는 부분은 최대한 분명하고 특출나게 공들여 표현하고, 나머지 배경을 포함한 덜 중요한 부분은 최대한 간략하게 또는 생략해서 여백으로 처리한다. 화가는 생활경험 중 느낌이 가장 강한,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느낀 인상을 생동감 있게 과장하여 표현하고, 이와 무관한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술적인 중요한 형상을 돋보이게 하며 동시에 보는 이에게 더욱 넓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놓아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 이외에 다하지 못한 또 다른 의미까지도 작품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謹毛而失貌"(터럭 같은 작은 곳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본 모양을 잃어버리는 것)와 같은 기계적인 자연모방을 생기가 부족한 죽은 그림으로 간주해 왔다.
셋째, 조직 구조에 주의한다. 화가는 사물을 관찰할 때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고정된 빛을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빛과 명암을 사용할 수 없다. 결국 대상의 형태와 조직 구조에 주의하게 된다. 수묵의 농담(濃淡)과 선의 경중(輕重) 및 곡직(曲直)은 물체의 구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밝고 어두운 선염(渲染 :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칠하는 것)은 화면의 필요에 따라 리듬감과 체적감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넷째, 형상기억에 의해 작업한다. 형태 및 구조와 표현방식에 익숙하게 된 후 화가들은 대상을 떠나 그 형상의 기억에 의해 창작을 하게 된다. 이는 대상의 복잡함과 우연히 발생하는 잡다한 사항에 국한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억 속의 형상이란 대상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들이며, 이는 화가의 머리 속에서 종합되고 개괄되어 복잡하고 미세한 부분들이 제거된 상태이다. 즉 대상을 떠나 그림을 그린다. 동시에 화가의 주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중국의 현대화가인 황빈홍(黃賓虹)은 "사생(寫生)에 의해서는 단지 산천의 골격만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산천의 기운을 얻고자 한다면 다만 눈을 감고 깊이 사색하여 그 정신을 요약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의 정신이란 산천의 정신과 화가의 주관적인 느낌을 포괄하는 말이다. 동양화가들이 형상기억에 의한 관찰방법을 중시하는 이유는 바로 전신(傳神)하면서도 사의(寫意)한 표현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형상기억에 의해 창작을 하는 것은 동양화의 동세(動勢)의 추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대상을 시종 앞에 놓고 천천히 모사(模寫)하는 것을 반대하고 순간에 발생하는 동세를 포착하여 표현할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 기(氣)의 이어짐과 세(勢)의 움직임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3. 회화에서의 자연 표현법--- 傳神과 氣韻生動
앞에서 설명한 이러한 관찰방법의 목적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전신(傳神 : 정신을 전달함)에 있고 또한 그림으로 하여금 기운생동(氣韻生動)하도록 함에 있다고 했다. 전신은 본래 인물화(人物畵)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기실은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것이겠다.
미인 서시의 얼굴을 그렸는데 아름답기는 하나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그건 왜일까? {회남자}에서는 "군형자(君形者)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형자'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형체의 임금노릇하는 것'이라는 뜻이므로 형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생기(生氣)'로 푼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특유한 정신적인 모습을 표현하지, 즉 신사(神似 : 정신의 닮음)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이 전신론(傳神論)은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에서 이론적 체계를 형성한다.
그 이론은 "이형사신(以形寫神 : 형상으로써 정신을 그린다)"과 "천상묘득(遷想妙得 : 생각을 옮겨서 묘를 얻는다)"으로 대표된다. 정신은 사물의 형상 가운데 존재하고 정신은 이러한 형상을 통해 표현되는 것인데, 형상이 없으면 정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형상과 정신은 모순의 통일체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그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형상의 묘사를 기초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형사신"이다. 고개지는 인물에서 전신하는 구체적인 부분을 눈동자로 보았다.
"천상묘득"은 "이형사신"하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생각을 옮긴다"는 것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대상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대상의 사상과 감정을 체득하는 것을 말하고, "묘를 얻는다"는 것은 대상의 정신적인 특징을 점차 이해하고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분석하고 정련(精鍊)하는 과정을 거쳐 예술적인 구상을 획득하는 것을 이름이다. 즉 "천상묘득"의 과정은 사유활동을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앞에서 제시한 "형상기억"과 연결시켜 보자. 형상기억이란 "천상(遷想)" 즉 "생각을 옮겨" "묘득"케 하는 인자(因子) 또는 핵심적인 방법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즉 한 인물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의 다양한 모습과 행동에 유의하며 관찰하다가 무르익으면 일련의 구체적인 형상기억이 준비되고, 어느 순간 그 인물과 시간 및 공간이 화가의 영감에 가장 적절한 일치를 보일 때 화가는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형상기억을 주역(周易)의 "입상이진의(立象以盡意 : 상을 세워서 뜻을 다한다)" "관물취상(觀物取象 : 사물을 관조하여 상을 취한다)"의 "상(象)"과 비교하고, 유사하지만 작은 범주로 보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사실 이 형상기억이란 용어를 만들어 사용할 때 여기에는 이미 다양한 사고의 응축 과정이 있었다. 정신을 표현하고자 하더라도 형상의 묘사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지금 눈으로 보면서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그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눈도 아니고 포괄적인 마음도 아니고 대상에 대한 정보들의 두뇌 속 저장창고 또는 내밀한 X파일 같은 것. 그러나 능동적으로 그 자신을 확산시키기도 하고 피동적으로 대기 상태에 있는 것. 이를 기억이라고 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 사람의 목소리나 표정과 행동에서 흘러나오는 숱한 느낌들. 식사하고 길을 가고 대화하는 일상 생활의 모습이나 때때로 우연찮게 접했던 특이한 상황에서의 그의 대처. 역사적인 인물일 때야 객관적인 평가의 바탕 위에서 그의 정신을 표현하겠지만, 그 기억이 그리움이나 연민이라면 주관적인 정서의 표출을 제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의 주관•객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번 본 인상이나 그 특징을 잊지 않고 또는 그 특징을 유형별로 잘 요약하여 손으로 숱하게 연습한 그 기능이 어떤 순간에 작동할 때 힘을 실어주는, 사물(또는 형상)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사물인 것도 같고 정신인 것도 같은, 그래서 사물과 정신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한 그것을 형상기억이라고 했다.
대립의 통일 또는 모순의 통일을 말할 때 그냥 논리적으로 말하면 그 사이에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 통일시켜 주는 현묘한 그 무엇 말이다. 남북의 통일을 말할 때 그 통일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근원적으로 묶을 수 있는 연대감이니 동족, 민족성 등 그런 것. 형태라고 해서 그냥 형태가 아니라 정신이 올라탄 형태이며, 정신이라고 그냥 정신만 있는 게 아니라 형태가 껴안고 있는 정신이다. 한 마디로 정신 없는 형태 없고, 형태 없는 정신 없다. 형상들을 기억하고 있는 두뇌 속의 신령한 인자(因子)라고나 할까. '형상들의 기억'이다. 기억 하나 하나가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는 열전자와 같다. 부딪는 곳마다 새로운 기억의 흔적들을 남긴다. 형상기억은 그와 같은 '사이'에 존재하는 기류(氣流)와 같은 것이다.
고개지 이후 전신론은 동양화에서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송대(宋代)의 비평가 등춘(鄧椿) {畵繼•雜說}에서 "회화의 작용은 대단히 큰 것이어서 천지만물을 모두 그려낼 수 있는데, 회화가 교묘하고도 진실되게 천지만물을 반영해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전신(傳神)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에게 정신이 있다는 것만을 알 뿐 사물에게도 정신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형태만을 전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그 정신을 전하지 못하는 것을 개탄한 말이다.
동양화의 소재는 역사적 인물의 고사나 산수, 화훼, 동물, 곤충 같은 것들이다. 옛날의 화가들이 이러한 소재들을 가지고 나타내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물에 내재된 생명의 기운과 작가의 사상감정이다. 이것을 양(梁)나라 사혁(謝赫)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했다. 기운의 의미는 애초에는 인물의 정신적인 기질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운생동을 "율동적인 조화"와 "생명의 움직임"의 두 개념이 결합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신을 통해 기운생동을 드러낸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전신론과 기운생동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회화나 시에서 공히 주객합일(主客合一)•정경융합(情景融合)•형신조화(形神調和) 등을 이루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 대상과 주체, 형태와 정신 등 대립되는 현상 또는 개념들이 정결하고도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눈앞의 대상을 그림을 통해 타인에게 제시하고자 할 때 대상 자체를 극사실로 묘사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느낀 대상의 정신이나 특징을 현저히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는 예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전자를 재현(再現)이라고 하고 후자를 표현(表現)이라고 부른다. 전신론과 기운생동은 표현론의 극점에 있다.
4. 인물화와 인물에 관한 시
우선 간단히 인물화의 생성과 발전과정을 정리해 보자. 문명의 여명기에서 예술은 예술 애호가들에게서가 아니라 위정자들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산수화보다는 인물화가 우세한 지위를 차지했다. 주나라의 황제들은 착한 황제와 악독한 황제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둘 다 걸어놓고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경고로 삼았다고 한다. 한대(漢代)에 와서는 황실의 독점에서 벗어나 공중도덕에 관여했다. 즉 황제나 성현 등 역사적 인물들의 그림이나 사회풍속에 관계된 것들 또는 신화와 전설에서 나온 것들로서 사회적인 덕행의 실천에 관계되어 있거나 상상적인 그림에 넓은 시야를 제공했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돌에 그림을 새긴 화상석(畵像石)이다.
사회가 질서와 평화를 잃고 혼란에 빠지자 화가들은 산수간에 은둔하거나 종교에 끌려 남북조와 당대에서는 도교와 불교에 관한 그림이 유행하게 되었다. 부처와 노자의 일생과 이들과 관계된 전설적인 인물들이 황제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나한상과 관음상, 그리고 소를 타고 있는 노자가 가장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이 사이 인물화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기초 위에서 "천상묘득(遷想妙得)"을 결합하여 전신(傳神)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한 인물형상을 창조해 내었다. 그리고 이 종교인물화는 점차 세속화•생활화되어 초상화(肖像畵)•사녀화(仕女畵 : 귀부인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그림)•역사화(歷史畵)•당대영웅화(當代英雄畵)•사회풍속화(社會風俗畵) 등이 대량으로 그려졌다. 특히 초상화는 사조(寫照) 혹은 사진(寫眞)이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전신(傳神)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봉건전제군주시대에 지존인 황제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서양화가가 일반 모델을 세워 놓거나 앉혀 놓고 그리는 것처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가는 재빠르면서도 정확하게 황제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화가로서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전통사회에서 초상화의 대상인물은 대부분 왕이나 귀족, 혹은 명문대가집의 규수들이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모두 장시간에 걸친 사생(寫生)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역대의 화가들이 어렵고 힘든 작업 과정과 장기간에 걸친 모색과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시각적(視覺的)인 기억력(즉 형상기억)에 의해 작업을 하는 방법을 창조해낸 것이다. 인물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정신적인 면모를 자세하게 관찰하는 능력과 자유자재의 사생능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상 인물의 특징과 정신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당대(唐代)의 많은 시인들은 인물화에 찬(贊)이나 서(序)를 쓰기도 하고 인물화를 심미대상으로 삼아 시를 썼다. 대개 화의(畵意)의 촉발을 받아 시정(詩情)이 움직였던 것인데, 그림 속 인물형상을 묘사하거나 재창조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화경(畵境)도 심화되고 강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써 보면, 당대 시인들이 인물화를 읊은 것은 회화를 심미대상으로 하면서 시의 언어적 수단을 조절하여 그림 속 인물의 용모나 정신과 심리상태를 재현해내기 위함이었다. 인물화를 대상으로 읊은 시가 대량 출현했다는 것은 당대 인물화의 시가창작에 대한 강렬한 흡인력과 영향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인물화의 영역으로 확대시켰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당대 시가와 회화예술이 상호융합하게 되는 한 동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시인들이 인물화를 보고 시를 읊는 창작행위를 통해 회화의식이 잠재적으로 누적되었고, 따라서 인물형상을 묘사하는 흥미가 유발되었으며 시가 언어를 운용하여 인물의 형상특징을 포착해서 그 내재정신을 드러내는 능력을 더욱 단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다양한 사회 현실 속에서 시인의 영감과 화가의 예리한 눈으로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이해하며 느끼도록 하였고, 나아가 이러한 필력을 익숙하게 사용함으로써 각양각색의 인물의 정신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당(初唐)시기까지는 아직 당 이전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서술할 때 인물의 언어와 동작으로 묘사하는 것이나 그 사상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능력은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지만, 인물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 즉 인물의 구체적인 외모와 형체의 특징을 묘사함으로써 그 형상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잘 하지 못했거나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결함은 초당까지도 극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성당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최호(崔顥)•이백(李白)•이기(李 )•왕유(王維)•왕창령(王昌齡)•두보(杜甫) 등 뛰어난 시인들의 붓 아래에서 각종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창조되었다. 아울러 오도자(吳道子)•장원(張萱)•조패(曹覇)•한간(韓幹) 등의 화가들은 명령을 받고 황제와 문무공신 및 영웅호걸들의 수많은 인물화를 그려내었고, 이에 응해서 시인들도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을 노래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를 풍자하면서 능력은 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한(懷才不遇) 인물형상을 그려냈다. 특히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는 8명 주선(酒仙)의 개성있는 행위와 정신상태를 표현함과 동시에 성당의 찬란함과 어두운 면을 반영했다.
知章騎馬似乘船 하지장은 말을 탄 것이 마치 배를 탄 듯
眼花落井水底眠 눈이 게슴츠레 우물에 빠져서도 졸고 있었다나.
汝陽三斗始朝天 李璡은 서말의 술을 마시고야 조회에 들고
道逢曲車口流涎 길에서 누룩을 실은 수레만 봐도 침을 흘리며
恨不移封向酒泉 벼슬자리를 주천으로 옮기지 못해 한이라나.
左相日興費萬錢 좌상 李適之는 하루의 술값이 만전이며
飮如長鯨吸百川 큰 고래가 강물을 들이키듯 퍼 마시는데
銜杯樂聖稱世賢 잔을 들면 청주는 즐겨도 탁주는 꺼린다나.
宗之瀟酒美少年 최종지는 깨끗한 미소년같은 모습
擧觴白眼望靑天 잔을 들고 의젓하게 하늘을 바라볼 때는
皎如玉樹臨風前 해맑은 옥나무가 바람 앞에 선 듯하다나.
蘇晉長齋繡佛前 소진은 항상 수놓은 부처 앞에서 재를 올리는데
醉中往往愛逃禪 취중이면 이따금 참선하다가 곧잘 달아난다나.
李白一斗詩百篇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편을 짓는다.
長安 上酒家眠 장안 바닥 술집에서 녹초가 돼서 자는데
天子呼來不上船 임금께서 부르시는데도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 스스로 신은 주중선입니다 하고 주정했다나.
張旭三杯草聖傳 장욱은 석 잔 술에 초서의 성인이란 소문나고
脫帽露頂天公前 왕공들 앞에서도 모자를 벗은 맨머리로 굴고
揮毫落紙如云煙 붓을 휘두르면 종이에 구름이 서린 듯했다나.
焦遂五斗方卓然 말더듬이 초수는 닷말을 마시면 우쭐거리며
高談雄辯驚四筵 고담과 웅변으로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나.
술에 관한 사람과 사건들을 집약해 놓은 작품인데 다른 묘사는 필요없이 가장 특징있는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각자의 성격과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서사와 인물 묘사를 통해 성격을 그러내는 방법이 절묘하다. 이 시는 언뜻 보기에도 인물화의 구도 배치의 표현기법을 잘 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문학 연구의 원로인 정천범(程千帆)선생은 이 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시가는 본래 시간예술인데 이 시는 공간예술의 형식을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각자 독립된 여덟 폭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긴 병풍처럼 되어 있으며, 사의(寫意, 또는 傳神)의 수법을 사용하여 몇 개의 필획으로 각 사람의 정신상태를 그려내었다"고. 그리고 두보는 육조에서 당대에 이르는 시기의 인물 군상들의 장권화(長卷畵)에서 표현방법과 형식적인 기법을 흡수하여 중국 시사상(詩史上)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걸작인 이 작품을 써내었다고 명대의 두보 추종자의 한 사람인 왕사석(王嗣奭)은 평했다.
당대 시인 중에 인물화의 예술기법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남종화의 시조이기도 한 왕유이다. "응정취상(凝情取象 : 마음을 집중하여 형상을 취함)"이 그 견해의 핵심이다. 이는 화가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집중하여 그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형상 속으로 옮겨 쏟아 넣어야 생기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천상묘득(遷想妙得)"과 거의 같은 범주의 표현인 것 같다.
5. 화조화와 영물시
혁신정신이 강했던 명대의 서위(徐渭)는 자연물의 어떤 속성이나 특징을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감정과 교묘하게 결합시켰다. 석류나 포도를 그려서 밝은 구슬이 버려져 있다는 사상을 실어 스스로 재주는 있으나 불우함을 비유했으며 또 방게를 그려 동탁 같은 무리들을 비유했는데, 이미 각 사물은 그 형태와 성질에 따른 비유나 상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위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란은 부귀한 것이기 때문에 광채가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대개 구륵(鉤勒 : 윤곽선)으로 그리고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써 뛰어남을 보였다. 지금 발묵(潑墨)으로 그렸는데 비록 생동한 뜻은 있지만 대체로 모란의 진면목은 아니다. 대개 나는 본래 가난한 사람이라 성품이 매화나 대나무와 맞지 영화롭고 부유한 것들은 전혀 무관한 듯 서로 닮지 않았다.
모란은 부귀를, 매화는 청고(淸高)를 상징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연물에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 자체의 특징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부여한 것은 아니다. 서위 자신은 모란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모란의 진면목은 그려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화가의 본성이 어떤 자연물과 맞는가 맞지 않는가는 결국 그의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심미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같은 인물에 동일한 사물일지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으며, 또한 사람마다 동일한 상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발레리의 시 [석류]는 서위가 말한 석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속 알맹이의 과잉에 져서/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
자신의 발견들에 터져나간/ 至上의 이마들을 나는 보는 듯.
……
이 빛나는 파열은/
일찍이 내가 지녔던 혼의/ 은밀한 구조를 생각게 한다.
하나의 지상(至上)의 이마가 감추고 있던 내면의 지성과 영혼을, 어떤 신비로운 힘이 터뜨려 드러낼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사상의 느린 성숙을 상징한다고 한다. 능력있는 자의 불우함과는 먼 은유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작은 자연이기 때문에 관찰하기 용이해서인지 표현과 재현의 논쟁이 제기되기도 했다. 청초(淸初) 6대가의 한 사람인 운격( 格)은 산수화나 화조화에 있어서 주정론자(主情論者)에 속했는데, 화훼화에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산을 말하는 내용을 보면 그의 이론은 확실하다. "봄산은 웃는 듯하고, 여름산은 노한 듯하며, 가을산은 화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잠자는 듯하다. 4계절의 산의 뜻은 산이야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은 능히 이를 말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이 부여해준 것으로 화가의 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화가가 산을 대신하여 말한 것이다. 전신론(傳神論)과 가깝다. 그러나 추일계(鄒一桂)의 화훼이론은 운격의 주정론과는 상반된다. 즉 사물을 빌어 작가의 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물의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것을 주장하고 사물 자체의 신(神)을 그릴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논쟁은 표현과 재현의 논쟁과 다를 바 없다.
사물을 소재로 삼아 쓴 시가 있는데, 이를 영물시라고 한다. 그림에서는 대상의 정신을 관찰하고 포착해서 그 정신을 평면 공간에 선과 색조와 구도를 이용하여 화가 자신의 의미체로 표현한다. 그러나 시의 입장에서 말하면 언어를 가지고 그 자체를 묘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상의 정신(주제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을 그대로 노출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다간 정서가 무르녹은 시가 아니라 논리적 교훈적 설교적인 산문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의 미감을 창출하기 위해서, 시의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영물시는 우선 대상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 대상의 다양한 특징과 주변 사물과의 관계 또는 상징적 의미 등을 이용해서 마치 안개 속에서 꽃을 보듯이 모호하기는 하나 아련한 미감을 느끼도록 언어를 조작하고 필요한 장치들을 배치한다. 여기에는 감성뿐 아니라 지적인 활동도 요구된다.
따라서 대상에 접근하는 시인의 자세는 화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더 넓은 시공에로의 확대를 위해 시력과 상상력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만큼 창작활동의 지면은 좁아지면서 글자수의 제한, 음률미의 추구, 다의적인 언어의 적절하면서도 주도면밀한 배치 등 구속이 따른다.
시는 본래 감정의 산물이다. 그 감정은 그냥 속에서 이유없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감흥을 느껴 주체와 뒤섞이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 보면 영물시는 가장 근원적이고 오래된 시의 한 양식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영물시(詠物詩)의 매력은 그 사물을 직접 말하지 않고 그 특징 및 용도나 주변을 말함으로써 그 사물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이는 마치 회화에서의 홍탁(烘托)의 기법과 유사하다. 그 목적은 글이 신선하도록 하며 또는 시의 언외지의(言外之意)를 증가시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독자는 글자의 배면에 숨겨져 있는 사물의 이름을 알기 위해 스스로 헤아려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론에서 시 감상의 경제학을 반대하는 것과 거의 합치되는 부분이다. 독자들의 시 감상 시간을 길게 함으로써 스스로 많은 의미를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 감상에서의 비경제학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더 이상 시가 아니라 수수께끼처럼 변질되어 버릴 수 있다. 일견 문자유희의 즐거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기실 시가 아니다. 한시 한 편을 감상하면서 이와 관계된 부분의 논의를 진행하자.
長脚小兒郞 다리 긴 꼬마 신랑이
吹簫入洞房 피리를 불며 신방에 들어간다.
愛吃紅花酒 붉은 꽃으로 빚은 술 마시기 좋아하지만
拍手命喪亡 손뼉 치면 목숨 잃는다네.
이 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 독자로 하여금 고민하게 한다. 이 꼬마 신랑은 누구인가? 정답은 "모기"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다리가 길고' '피리를 불며'(윙하는 소리) '紅花酒(피)를 좋아하는 것'은 모기의 가장 전형적인 특성들이다. 이걸 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를 유희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지적인 놀이이다. 대단히 참신하고도 기발한 착상이다.
어느 화가가 모기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여름밤에 잠 못 이루게 하는 흡혈귀의 야간경보. 달빛이 창문을 통해 당당하게(날씨가 무척 더울 것이므로 모든 문을 열어 놓았을 것) 방안으로 들어와 얼풋 잠든 이의 얼굴이나 팔 다리를 비추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모기가 비상 착륙해서 피를 빨아먹고 있는 그런 그림. 화가는 백성들의 고혈을 숨어서 챙기는 탐관오리들을 생각하며 그 상징으로 이 그림을 그릴지도 모른다. 그는 가장 적절한 장면을 설정하여 생동감있게 그리면 된다. 그러나 '붉은 꽃으로 빚은 술'은 그림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꼬마 신랑'을 그릴 수도 없다. '피리' 소리도 표현할 길이 없으며 '피리'를 분다는 재미있는 착상의 묘를 전달할 방법도 없어 보인다. 비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림과 시의 가장 분명한 차이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달빛과 어둠의 명암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 몇 줄기 달빛 속에 지쳐 잠들어 있는 사내의 얼굴과 투박한 팔뚝에 앉아 포식하고 있는 모기를 생동감있게 그려낸다면 이것 또한 걸작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단순한 유희의 작이 아님을 웅변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위의 시를 영물시의 한 예로 받아들였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대상에 대한 이해는 있지만 정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물시에서의 묘사 기법의 다양성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것도 꽤 체계적이다. 즉 영물시에도 단계가 있고 최상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영물시의 여러 가지 유형 즉 모델을 제시했다. 자잘한 해설은 필요하지 않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름은 숨기고 그 용례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朝如靑絲暮成雪(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이 되었다)" '푸른 실(사실은 검은 실)'과 '눈(雪)'은 머리카락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비유이다.
含風鴨綠鱗鱗起 바람 머금은 강물 비늘처럼 일어나고
弄日鵝黃 垂 해를 희롱하는 버드나무 하늘하늘 늘어졌구나
송대 왕안석의 시다. 멋지게 대구를 맞춰 놓았는데 윗 구와 아래 구의 7글자 모두가 딱 맞아 떨어진다. '압록(鴨綠)'과 '아황(鵝黃)'은 글자대로 풀면 '오리의 푸르름'이며 '거위의 노랑'이다. 그러나 오리의 머리가 짙은 녹색이므로 같은 녹색의 대표인 '강물(江水)'을 대신 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청산녹수(靑山綠水)라고 하듯이. 그래서 우리의 압록강은 오리 머리처럼 짙은 녹색의 강물이라는 뜻에서 명명된 것일게다. 어린 거위는 담황색을 띤다. 그래서 '아황'은 담황색을 지칭하거나 담황색을 띠고 있는 사물을 말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초봄에 물이 올라오는 '버들가지'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소동파는 "小舟浮鴨綠, 大杓瀉鵝黃(작은 배가 짙푸른 강물 위에 떠있고, 큰 구기자로 좋은 술을 쏟아 놓는다)"이라고 노래했다. '아황'은 그 담황색 으로 인해 술(酒)을 지칭했다가 한중(漢中) 지방의 명주로 자리를 굳힌다. 아마도 푸른 강물 위에 배를 띄우고 술 주걱(구기자)으로 술을 잔에 퍼담는 것을 묘사한 시일 것이다. 한자가 지니는 함축성과 다의성에서 비롯된 표현들이다.
그리고 영물시의 최상은 "부즉불리지간(不卽不離之間)"에 있다고 한다. 즉 제목이나 대상에 대해서 "不可遠, 不可近(거리를 두어서도 안되고 너무 가까이 밀착해도 안된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물시는 정교하기가 가장 어렵다. 제목에 너무 밀착하면 성가시게 달라붙어 못쓰고, 제목에 들어맞지 않으면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름지기 부즉불리(不卽不離) 즉 딱 붙어도 안되고 떨어져도 안되는 그 사이에 있어야 한다. (詠物詩最難工, 太切題, 則 皮帶骨. 不切題, 則捕風捉影, 須在不卽不離之間)
여러 종류의 사물을 읊더라도 의인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의미의 도약 또는 비약을 위해 대기한다. 두보의 영물시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사(人事)와 세법(世法)의 바탕 위에서 사고를 시작하여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보여주면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은 맑은 덕과 지조가 있는 은사•군자•일사(逸士)•선비 등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일반 꽃들은 대개 미인으로 비유되며 곤충들은 그 형태와 특성 및 행동에 따라 그에 적절한 인간적 성정을 지닌 유형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사물과 의미가 일대일 대응으로 사용된다면 그게 무슨 시일까. 사물과 의미 사이의 그 공간에 가득 채워지는 비유와 은유와 상징의 안개나 소리나 희미한 색깔들, 그게 있음으로써 정물을 동작과 표정으로 변화시키면서 동음이의어와 같은 묘한 단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다양화하고 심화시켜 본래 정이 없고 맛도 없는 사물을 새로운 의미와 상상의 세계로 전환시킨다. 이것은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언어의 힘이다. 대상의 정신이 절묘하게 표현된 회화가 만들어내는 세계와는 다른 3차원의 세계이다. 그림이 시간과 공간을 한 지점으로 압축하는 것이라면, 영물시는 작은 대상일지라도 시공을 확산시켜 떠돌게 한다. 즉 유한한 사물의 한계를 탈출하여 무한한 뜻으로 진입하게 한다.
6. 맺으며
인물화와 화조화의 여러 기법과 이들을 소재로 한 시와의 영향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물에 대한 회화의 다양한 표현방법이 시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거의 성당(盛唐) 시기에서이다. 남조를 지나 전신론(傳神論)과 천상묘득(遷想妙得) 등의 이론들이 가장 강력한 법칙으로 강조되면서 화가의 표현방법이 시인의 창작수법에도 원용되었다. 이것은 당대의 활발하고도 의욕적인 정치 사회 및 문화적인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무대신과 영웅호걸과 기인일사(奇人逸士)들을 칭송하며 출장입상(出將入相 :궁 밖을 나서서는 장군으로 공을 세우고, 돌아와서는 재상이 되는 것으로 당시 입신양명의 표준임)을 꿈꾸었던 시대심리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화조화는 대개 송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다. 문인 중심의 중앙집권체제에서 반성적이고 내면화하면서 안으로 침잠하거나 이성적 사유를 즐기던 송대 문인들은 그들의 일기(逸氣)를 수묵화나 서예로 표출하였다. 특히 구양수(歐陽修)나 소식(蘇軾) 등은 남조와 당의 맥을 이어 이형사신(以形寫神) 신사(神似)를 주장했고, 이와는 달리 휘종을 위시한 주위의 화원의 화가들은 고상한 색채와 섬세한 필법으로 화조화를 그렸다. 생활의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송대의 문인과 화가의 작품 중 화조화가 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능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물론 송대에 와서는 동물이나 곤충, 화조 등을 제외하고도 일반 생활의 요소에 사용되는 기물이나 음식까지도 시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귀족중심의 문화가 일반 대중으로 확산되어 가는 경로에서 유교와 불교 및 도교 사상의 실천궁행으로 성속(聖俗) 또는 아속(雅俗)이 불이(不二)라는 관념(觀念)이 조성된 것과도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재현이냐 표현이냐를 두고 지금도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표현'한다는 것도 자연을 재현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니만치 자연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또한 손에도 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청대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인 정섭(鄭燮 :호는 板橋)은 평생을 대나무와 난을 그렸으며 중요한 화론을 남겼다.
강가의 여관에서 맑은 가을 새벽에 일어나 대나무를 보니 안개 속의 여린 빛과 해 그림자와 이슬이 모두 성긴 가지와 빽빽한 잎사귀 사이에 떠돈다. 가슴 속에 갑자기 흥이 일어 드디어 화의(畵意)가 생겼는데, 기실 가슴 속의 대나무는 결코 눈 속의 대나무가 아니다. 그리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쳐서 붓을 대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렸는데, 손 안의 대나무도 또한 가슴 속의 대나무가 아니다. 요컨대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는 것은 정해진 법칙이요, 정취가 법 밖에 있다는 것은 변화의 기틀이니, 어찌 그림만이 홀로 그러하겠는가!
정섭은 일반적으로 예술창작에서 거치게 되는 3가지 단계의 과정과 그들 사이의 관계 및 변화에 대해 대나무를 그리는 과정을 빌어 논술하고 있다. '눈 속의 대나무 (眼中之竹)'란 아직 화가의 사상적인 평가나 감정상의 여과를 거치지 않은 화가의 머리 속에 비친 자연경물의 영상을 말하고, '가슴 속의 대나무 (胸中之竹)'란 화가의 심미관이라는 척도의 평가를 거쳐 화가의 주관적인 요소가 깃든 예술적으로 전형화된 형상을 말하며. '손 안의 대나무 (手中之竹'란 화가의 예술실천을 통해 물화(物化)된 자연미의 형상을 말한다.
이 3가지의 과정은 고리처럼 서로 물려 있어서 그 중 하나만 빠져도 안된다. 눈 속의 대나무가 없으면 가슴 속의 대나무는 곧 주관이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되고, 가슴 속의 대나무가 없으면 손 안의 대나무는 곧 난잡하여 질서가 없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내재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예술활동 속에서 정섭이 제시한 "정해진 법칙 (定則)"과 "변화의 기틀 (化機)"이라는 문제는 가슴 속의 대나무와 손 안의 대나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자연은 저기 바깥에도 있고 여기 이 주체의 가슴 속에도 있다. 바깥에 살아 있는 저 자연을 살아 있는 채로 그 정신을 화폭 위나 원고지 위에 올려 놓으려면 우선 눈와 가슴을 살려 놓아야 한다. 스스로 살아 있지 않으면 어찌 "뜻이 붓보다 먼저 있음"을 알겠는가! 어찌 저 내 속과 같은 자연이 살아 있음을 알겠는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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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09:15:31, Hit : 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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