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francesco 
Subject   린더호프 城 (월간 "징기스칸" 월간조선사 발행 2005. 1)








 





Dietrich Fischer-Dieskau 가 부르는 Wagner 의 오페라 Tannhauser 中의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입니다.














 



린더호프 城

 

悲運의 왕 루드비히 2세의 휴양지

 

글/ 李東活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悲運(비운)의 왕 루드비히 2세!

그가 연인보다도 더 사랑한 환상의 별장들을 찾아서 가는 길은 더없이 즐겁다.


맥주의 고장 뮌헨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을 지나면 로맨틱 가도의 남쪽 끝,
알프스 북쪽 언저리에 휴양지로서 이름이 높은 퓌센이 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이 가까워 남쪽 멀리 티롤 지방의 산들이 보이고
레히 강과 주변에 아름다운 호수를 많이 끼고 있어 낙원 같은 곳이다.


린더호프 城(성)은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건축한 호헨슈반가우 城을 제외하고
노이슈반슈타인 城, 그리고 헤렌 킴 城과 함께 루드비히 2세가 지은 3대 城 중의 하나이다.


이 아름다운 城은 알프스 암메르가우 산 속의 경치 좋은 그라스방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노이슈반슈타인 城에서는 10여km가 채 안 되는 거리이다.


조용한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로코코 양식의 별장은
1870년부터 8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쳤으며,
왕이 만든 세 개의 城 중에서 유일하게 생전에 완공되었다.


루드비히 2세는 재위 시절 자신의 城 중에 특히 이 별궁을 가장 사랑했고
또한 제일 오래 머물며 애수를 달랬다.

지극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 城의 모델이 된 것은
파리 베르사유 궁에 있는 별채 트리아농이다.


궁전 앞 정원에 다다르면 아름다운 분수가 인상적이다.

수압을 이용한 펌프로 작동되는 이 분수대는 32m 높이로 물기둥을 뿜어낸다.
별궁 뒤편에서 계단식으로 계곡 물을 끌어들여 작동하게 했다.


내부 침실에는 베니스 풍의 촛대로 꾸며진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는 가운데
화려한 침대와 짜임새 있는 거울의 구성으로 호사의 극치를 보여준다.


루드비히 2세는 오욕으로 물든 속세를 떠나 늘 알프스를 찾았다.

세상은 그에게 있어 다스려야 할 것이 아니었고,
차라리 세상을 도망치고 싶었다.


고귀하고 옥좌 높은 곳,
천상의 大氣(대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
신성함과 진정한 축복이 활짝 만개한 곳에서

그는 國政(국정)은 뒤로 한 채
온통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바그너 음악과 함께 그의 이상을 찾았다.


궁전 뒤에는 바그너의 오페라「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 산의 동굴을 모방하여 만든 동굴이 있다.

이름하여 「비너스 산의 魔(마)의 동굴」이다.


왕은 바이로이트에서 개최된 최초의 음악제 리허설을
바그너와 단둘이서만 보고 돌아온 후
감동받아 이곳에 인공 동굴을 만든 것이다.


그는 24개의 아크등으로 조명을 달고
연못 안에 배를 띄우고 혼자서 바그너를 추억했다.

동굴의 좁다란 길을 따라가면 바위들이 엇갈려 있는 언덕아래
조그만 연못에 조개 같은 모습의 배가 떠 있다.

오묘하고도 신기한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살피는 순간,
갑자기 「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에의 찬가」가 동굴 안을 온통 진동시킨다.

언덕의 조명 빛들이 선율에 맞춰 변하고
무지개와 「탄호이저」에서 묘사했던 물결기계도 갖추어져 있다.


왕의 식탁도 독특하다.

왕이 사람을 기피했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계적인 설비를 가동해
아래층에서 식사를 준비해 끌어올려 식탁을 장식했으며,
식사를 끝내면 식탁은 바닥 밑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오페라 「탄호이저」에서 우리는
육욕적인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투쟁을 통해서
종교적인 사랑에 도달하려는 바그너의 구도자적인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비운의 왕 루드비히 2세!

일반사람들이 꿈속에서나 이룰 수 있는 화려한 인생이
그에겐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든 외딴 동굴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憂愁(우수)와 감상을 벗하며 살았다.


젊은 시절 큰 키,
긴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의 수려한 용모는

보는 이의 가슴을 상큼하게 하는 매력을 풍겼었다.


많은 여성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각국 왕실의 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고
자유를 갈망하고 상상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을 즐겼다.


그는 군주로서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결국 바바리아의 독립을 잃게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人生을 꿈속같이 산,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사랑한 휴머니스트였다.


오오! 王이기 이전에 한 人間이길 원했던 님이시여..!



2004, 12, 17

이동활 francesco 활리




- 이 글과 린더호프 城의 사진은 월간 "징기스칸" - 월간조선사 발행- 의 의뢰로 새해 2005년 1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 사랑하는 음악정원 가족여러분! 몸도 마음도 추운 요즘이지요!
- 음악과 함께 따뜻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구요!





(12.17⌒16:42:02, Hit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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